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여우 Dec 11. 2022

격리된 소녀, '외로움'과 맞서다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추천지수는 ★★★★☆ (9/10점 : 몇 년이 지나도, 계속계속 생각이 나는)

"제발 격리 같은 소리는 내 앞에서 하지 마.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렇게 살아봐서 알아. 격리가 내 인생이었어." (p.295)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p.300)


혼자 지낸 건 그녀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p.448)


   1969년, 늪에서 발견된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에 경관들은 습지에서 홀로 사는 '마시 걸' 카야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1952년, 어린 소녀 '카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데요. 곁에 있었던 가족과 친구들도 자신을 떠나고, 홀로 남은 카야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것은 자연뿐입니다. 부정적인 시선과 차별을 견뎌내면서 스스로 생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체이스 앤드루스와 조우하게 되는데......


   동물학자 '델리아 오언스'가 묘사하는 섬세한 자연경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입니다. 이번에 영화가 개봉하면서 원작 소설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데요. 저도 원작의 팬이었어서 무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실제로 관람해보니, 소설의 장점이었던 섬세한 자연경관을 제작자들이 충실히 구현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더군요.

    원작에서는 습지와 늪의 대비, 그리고 습지를 살아가는 생물들에 대한 묘사가 일품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묘사가 단순히 배경으로서만 채택된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더욱 독자에게 오랜 인상을 남겼습니다. 예시로, 암컷 사마귀가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 장면 등은 향후 등장인물의 행적에 대한 하나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탄탄한 구성, 산만하지 않고 흥미롭게

   이러한 탁월한 묘사와 함께 탄탄한 플롯도 이 작품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초반에 에서는 체이스 앤드루스가 사망한 '현재'와 카야의 어릴 적 삶을 다룬 '과거'가 번갈아가면서 제시됩니다. 이와 같은 빈번한 시점 변경은 잘못하면 구성을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었으나, 작가의 탁월한 필력에 의해 오히려 흥미진진한 플롯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인물의 삶을 처음부터 풀어나감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지루함은, 경관들이 사건을 쫓는 긴박한 이야기와 어우러져 완급이 조절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처음부터 이야기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또한 자연경관의 묘사만큼이나 후반부의 법정 묘사도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사건의 증인들을 다채롭게 불러들임으로써 진범의 정체나 판결의 방향 함부로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나아가 변호사와 검사의 대화를 통해 사건 당일의 진실을 쫓으면서, 동시에 카야라는 인물이 받고 있던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 주는 장면도 결코 신파스럽지 않고 적절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외로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작가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는 '외로움'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큰 반전을 통해 독자들은 카야가 짊어져야만 했던 고독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한 사람의 불행을 다룬 찝찝한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살아가는 터전에 해당하는 야생이 그녀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있기 때문도 있으며, 그녀가 자신의 고독과 맞서 싸우면서 스스로 삶을 쟁취해나가는 과정이 독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작중 카야는 습지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워나가며, 체이스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도시의 삶에 흡수될 위기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야는 끝끝내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구축해나갑니다. 도시에서의 시끄러운 삶보다 야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자신의 삶을 옳다고 여겼고, 그 신념을 지지해주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고독만큼이나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마찬가지로 격리되어 있는 우리들은 카야의 삶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그녀가 자신의 삶을 되찾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 또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 카야가 시를 썼듯, 제게는 글쓰기가 오랜 세월 고독하게 살아온 후 타인에게 손을 뻗는 길이었어요. 그러나 독자들이 없었다면 그 의미는 훨씬 퇴색되었겠지요. 그래서 제가 쓴 단어들을 통해 이토록 많은 이들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벅차게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p.467)


   원작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쓰였던 시가 영화에서는 비중이 많이 낮아지고, 긴 분량의 작품을 비교적 짧 영화에  담아내려다 보니 급진적인 전개도 눈에 띄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원작을 해치지 않고 충실하게 각색한 영화여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했던 작품입니다만, 카야의 삶과 그 속에 담긴 외로움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원작 소설도 같이 봐야만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고독'에 대해 더더욱 곱씹어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격리가 내 인생이었다'라고 이야기한 카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카야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동시에 고독과 맞서 싸운 카야의 삶을 본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저에게는 작품의 배경과 메시지가 깊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보다 자연스러운 번역이 어우러진다면, 누구에게나 명작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개인적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괴되는 야생 속에서 함께 울부짖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