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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Jun 22. 2023

반한 사람 한 명 추가요

푸른여우의 냠냠서재 / 허진희, <독고솜에게 반하면>

추천 지수는 ★★★★☆ (9/10점 : 몇 번이고 반하게 하는 책)


   ★ 이미 상처가 많으면 생채기 몇 개 더 난다고 해도 별로 아프지 않을 거 같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안 그렇거든. 또 상처받을까 봐 겁쟁이가 돼. 마음이 너무 너덜너덜해져서 작은 상처만 더해져도 죽을 거 같으니까. (p.116)


   ★ 요정이 돕든 마녀가 돕든 탐정이 돕든 아니면 똥꼬땅이 돕든, 마법을 부려서 돕든 저주를 내려서 돕든 범인이 죗값을 치르게 해서 돕든 그저 안아 주기만 하든, 중요한 건 오직 한 발 다가설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누가 어떻게 돕는지에는 정답이 없었다. 그 결과는 어쩌면 긴 시간을 돌고 돌아야만 확인이 가능할 수도 있다. (p.120)


   ★ 지금까지 본 바로는 남의 속사정이나 나쁜 소식 같은 것들이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였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쉬웠고 나쁜 이야기는 흥미를 끌었다. 그러니까 결국, 멀리 그리고 빨리 퍼지는 소문의 핵심은 다름 아닌 타인의 불행이었다. (p.131)


   학교에서 탐정을 자칭하는 서율무는 전학생인 독고솜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다른 학생들로부터 은근한 괴롭힘을 받고 있던 독고솜은 서율무와 점점 친해지게 되는데요. 반에서 여왕 행세를 하는 단태희는 독고솜의 기묘한 능력을 목격하고 이전의 악연 등을 이유로 그녀를 괴롭히기 위한 갖은 수를 쓰게 됩니다. 그러던 중 같은 반의 은영미가 길을 걷던 도중 무차별 폭행에 휘말리고, 탐정 서율무는 독고솜과 함께 진실을 쫓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톡톡 튀는 입체적인 인물들, 그들이 하는 추리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허진희 작가님의 <독고솜에게 반하면>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건 3년 전이었는데, 좀처럼 서평 쓸 생각을 못하다가 이번에 다시 읽고 평을 쓰게 되었어요. 출간된 후 몇 년이 지난 책들은 다시 읽어보면 맛이 없어지는 경우들도 있는데,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들고 싶은 이 책의 장점은 톡톡 튀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탐정 역할을 하는 서율무, 신비한 능력을 지닌 독고솜, 반에서 여왕 행세를 하는 단태희. 간략하게 설명하면 그다지 독특할 것 없는 설정임에도, 이들이 선보이는 말과 행동들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이 책의 잔상을 짙게 남깁니다. 그것은 인물들이 지니는 입체성 때문도 있습니다만 개개인이 지닌 서사가 굉장히 탄탄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서율무는 탐정을 자진하면서도 과거의 일로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꺼림칙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단태희는 지금의 성격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사건을 겪어 왔습니다. 등장인물의 개인사가 탄탄하면서도 이것이 적절한 타이밍에 언급되기 때문에 이 책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추리 과정에서 인물들이 품고 있던 속마음이 점차 드러나기 때문에 함부로 사건의 범인을 유추할 수 없으면서도, 이러한 전개가 후술할 '이해'라는 주제의식과도 부합되는 면이 있어 탁월하다고 보았습니다.


  고정관념을 넘어 '이해'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추리에 초점을 둔 탐정소설은 아닙니다. 이 책의 초점은 우리가 흔히 느끼고 있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에 맞춰져 있습니다. 소설에는 우리가 흔히 느끼고 있는 고정관념들이 신발을 벗고 신는 세세한 장면에서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율무가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온 것을 안 독고솜은 급한 마음에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갈 때 양말이 더러워진 탓에 새 신발을 신고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또한 고양이가 손가락을 깨무는 것에 대해서 '말을 못 하니까 이렇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임에도 우리가 평소 '얘가 화가 났나?'라고 오해해 왔던 일들을 언급해 줍니다.

   이렇게 작품 내에서 빈번하게 무너지는 고정관념은 우리가 낯선 누군가와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는 것에 대해 큰 경각심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사건의 발단이라고도 볼 수 있는, 단태희의 집 앞에 쥐가 잔뜩 가져다 놓인 일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선입관에 의한 것임이 밝혀집니다. 그러나 그 오해를 풀지 않은 채로 앙금이 쌓였기 때문에 작중에서는 따돌림당하지 않아도 될 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표지에서도 쓰인, '누군가를 이해하는 기회를 저버리는' 일이란 이러한 내용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데에 있어서 한 발 나아가는 용기를

  이 작품에서 사실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선입관, 그리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을 불행하게 만든 데에는 어른들의 영악함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단태희의 모친은 강해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단태희에게 '어른들의 지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서열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방법이었고, 이것을 곧이곧대로 들은 단태희는 다른 학생들과 짜서 학교폭력을 주도하고, 결국에는 그 죄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이 '누군가를 돕는 데에 있어서는 다가서는 용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더욱 부각해 줍니다. 잘못된 길을 들어선 아이들을 구원한 것은 어른들의 지혜가 아니라 한 발 더 다가서는 용기였으며, 그러한 용기가 있었기에 등장인물들은 서로 지닌 오해와 선입관을 타파하고 마주 볼 수 있게 됩니다. 본래 의도가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행동에 숨겨진 의도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 "누굴 돕는 데 정답은 없어. 요정이나 탐정이 아니더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p.119)


   탄탄하게 짜인 설정과 인물관계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재미있는 탐정소설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논픽션 소설로서 읽히게 합니다. 나쁜 소문이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퍼지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영악함을 '삶의 지혜'라고 포장하고, 백지상태의 어린이들은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또한 어린이든 어른이든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쉽게 선입관을 가지고, 쉽게 다투기도 합니다. 

   학교폭력 문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최근에 있어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독고솜이라는 인물에 대해 반(反)심을 갖게 하다가 나중에는 독고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이해하게 하는 이 책에 대해 저는 '반했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를 몇 번이고 반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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