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란트 15화

사랑.. 정말 사랑?/ 산세베리아

by 하늘바람

직접 이성을 사귄 적은 없는 세희이다.

그렇지만 세희에게도 좋아하는 이성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을 좋아했고 멋지게 춤을 추는 댄스 가수를 좋아하였다.

예전에 비디오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는 시절에는 그 사람이 출연한 방송프로들을 녹화하였다.

그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순간들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간직하고 싶었다.

이건 내가 평생을 간직하고 나이 들어서도.

항상 보며 힘을 내고 기분이 좋아질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방송 모습들을 깔끔하게 녹화 뜨고 싶어서 플레이어 두 개를 연결하는 기술을 아는 언니의 집에서 테이프를 동시에 넣어 화면을 보며 “컷”, “플레이”를 반복해 외치기도 하였다.

그 테이프들이 10개 넘게 모였고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려 하였었다.

그때가 10대 후반쯤 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세희는 이제 40대가 넘은 나이이다.

지난 겨울, 방을 정리하던 세희는 옷장 안에서 고이 모셔져 있던 그 사람의 녹화 테이프들을 발견하였다.

녹화 테이프의 라벨에는 날짜와 프로그램 이름들이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다.

이 테이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지금은 비디오 플레이어조차 없었다.

그 테이프들을 비를 맞지 않게 비닐에 잘 밀봉하여서 재활용함에 넣었다.

만약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큰 액수의 가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지난 마음의 깊이를 생각한다면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 사람을 너무나 진심으로 사랑하였지만...

지금의 그 소중함은 마음속에 깊이 남은 기억의 단편, 그 따스함인 것 같았다.


젊은 날의 한순간들을 담은 그 기록들이 지금의 그 사람에겐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을 테니까

현재의 삶에 있어서 마주치고 이야기하며 웃는 그 순간이 바로 현재의 인생일 테니까.

내 손안에 남는 기록들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던 일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 것보다는 내 마음안의 한곳에 그 사람.


내가 사랑했던 그 표정 하나를 간직하는 것이 내 평생의 기억 중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을 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절히 진심이라고 느꼈던 그때 나의 감정도, 이제는 기억조차 쉽게 나지 않는 무관심함으로 이렇게 남겨진 것을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불꽃은 금세 타오르고 그 재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진다.

바람이 불면 그 흔적의 기운조차 알 수 없게 흩어져버린다.

아무도 그때의 기억을 찾을 수 없다.

나조차도 말이다.




사랑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나의 현재.

나의 나이의 무게.

그리고 나의 곁에 손잡을 사람.

사람이라는 미완의 존재에 완성형은 있을 수 없는 것 같아.

앞, 뒷면이 다른 감정의 움직임 안에서 언제나 앞면이 나올 수도 없고, 언제나 뒷면이 나올 수도 없다.

이 세상 그 누구의 사랑도 완성형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건 거짓말.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나는 나의 감정을 다해서 마음안의 너를 키우며 돌볼 것이다. 네가 산세베리아. 화분에 담긴 식물이라면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주며 내 방 한곳에 머물고 있는 너를 생각하고 기쁜 마음에 미소 지을거야.

내가 마시는 물을 조금 너에게 주며 가만히 이름을 불러보겠지.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행복했어.

난 아픈 일이 있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돌아본 너는 죽어있었어.

내가 물을 너무 자주 준 것이었어.

그 화분을 치우며 마음의 한구석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알았어.

치유하려 하였지만 쉽지 않았어.

그렇지만 너의 웃는 목소리를 들으며, 너의 환한 미소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너의 목소리로 부르는 따뜻한 노래는 아침에 눈 뜨는 내게 기분 좋게 햇살을 바라보는 하루를 선물해 주었어.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난 너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거야.

내가 너의 목소리를 쉽게 알아보도록, 내 마음안의 너의 자리를 온전히 언제나처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나의 곁에.

네가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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