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바람별빛 Oct 03. 2020

내가 해외취업을 결심한 이유

한국인들의 디자인 실력은 결코 촌스럽지 않다

직장인 권태기도 입사 3년 차가 가장 고비라는 말처럼 캐나다로 이민 온 지 이제 3년이 조금 넘어가는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약간의 권태기가 왔다. 좋은 점들이 정말 많은 나라지만 부모와 떨어져서 산다는 것과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 있다는 것은 코로나가 터진 지금 같은 시국에는 더욱더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필자가 해외취업/이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1. 한국인이 보는 한국 디자이너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김영세 디자이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김영세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정말 수많은 멋진 디자이너들이 있지만 어쩐지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 디자인을 촌스럽게 여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수능에 나오지 않는 비주류 과목이라는 이유와 예체능은 인생 도박 테크트리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먹고살기 힘든 전공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필자도 대학생활을 하면서 유명 금융권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팀장님께 들었던 소리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분께서는 "우리나라 미대 웬만한 교수들보다 나의 미적 감각이 더 뛰어나다. 너 어차피 미대 나와서 할 것도 없고 먹고살기도 힘들 텐데 지금 인턴 잘하면 정직원 시켜 줄테니까 나 잘 따라와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어이가 없어서 황당했던 기억이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야 그러려니 할 법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미대 교수님들을 폄하하는 그의 언사는 참으로 오만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미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평균 연봉은 일반 직군의 평균 대비 현저히 적다. 낮은 단가로 인해 디자인 실력도 폄하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예로 필자가 유명 대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한국 디자이너 차별도 위의 사례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회장님은 본사에 백 명이 넘는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두고 꼭 해외 에이전시를 고용해 디자인을 진행하곤 했다. 하지만 실상은 비싼 수임료를 받는 해외 에이전시들이 뿌려놓은 지뢰들을 월급쟁이 디자이너들이 해결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나는 몇 년간의 이런 반복되는 똥 치우기로 인해 외국 에이전시들에게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2. 편견 없이 실력으로 평가하는 나라


실제로 캐나다 사람들이 봤을 때 나는 아시아의 작은 한 나라에서 온 이름 모를 대학 출신이며 아무개 회사를 다니던 디자이너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면접에서 나의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중점으로  내가 일에서 문제를 어떻게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며 나를 파고들었다. 덕분에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강점을 말하는데 온전히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필자가 한국에서 보았던 면접은 대부분 호구조사로 시작해 상대를 기분 나쁘게 몰아치는 압박면접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이 과연 면접자의 실력을 검증하는데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사내에서도 동료들끼리 정말 친해지기 전까지는 나이나 출신학교, 경력, 가족관계 같은 사적인 내용들은 본인이 직접 말을 해주지 않는 이상 먼저 질문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함에 있어 서로가 다른 편견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캐나다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지만, 내 실력 하나로 운 좋게 제 1금융권 대기업 중 한 곳에 입사할 수 있었다. 또 회사에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peer review(동료 평가)에서 최고 평점을 받았고, 사내 어워드에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의 대학 출신이나 경력 때문이 아닌 오로지 나의 실력만으로 이러한 평가를 해줬다는 점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여기서는 2년제 전문대(컬리지)를 나왔든 4년제 대학을 나왔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더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도 아니고, 2년제 전문대학을 나왔다고 취업문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어느 곳을 나왔던지 본인이 실력이 좋으면 채용이 되는 것이고,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자신이 나온 학력으로 인해 발목 잡히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이러한 편견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캐나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3.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인


나는 캐나다에서 한국인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한국인을 한 번도 안 고용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국인을 한 번만 고용해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캐네디언들은 그들의 실력과 근면성 실함에 감탄한다. 빠릿빠릿한 일처리는 기본이고, 까라면 까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어떤 업무를 시키던 어떻게든 기필코 완수를 해내는 능력은 사실 대부분의 캐네디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능력이다. 또한 한국에서 지옥의 입시(수능시험 다음날부터 실기시험 당일까지 이어지는 대략 3개월간의 24시간 지옥훈련 대장정) 경험한 대부분의 미대생들은 이미 탄탄한 기본기를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디자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진짜 별거 아닌 걸 해도 그들은 감탄하고 놀랜다. 사실 서양 사람들 중에 말발만 좋고 실력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포폴을 보면 많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유능한 한국인 디자이너들을 유독 한국에서만 촌스럽다고 여기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해외 각국의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멋진 디자인으로 활약하며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국내 디자이너들의 실력이 높게 평가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전 05화 국제이사 준비#2-이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