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가 되면 햇빛은 오렌지색이 된다.

by 하늘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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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교육원 동기와 캠퍼스 내 산책로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바람도 선선하고 주변의 무성한 나뭇잎이 하나의 풍경같기도 해서 대화의 흐름도 유연하게 흘러갔다. 오후 7시쯤 되었을까. 그 친구의 얼굴에 오렌지 빛이 드리워지고 주변의 나뭇잎이 따뜻한 색으로 변해감을 느낄 때 미안하게도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인디 밴드의 앨범 커버 같았고, 그 친구는 밴드의 보컬 같았다. 노래를 하듯 연신 입을 벙긋 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던 친구도 내 뒤의 무성한 나뭇잎과 벤치에 짜그라져 있는 가방을 보며 “빛이 너무 예쁘게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풍경뿐 아니라 나 자신도 그 풍경 속 하나가 되어 존재해 있었다.


햇빛이 오렌지색이 되면 비춰지는 모든 것은 따뜻함을 입는 듯 하다. 그 날은 오후 7시쯤 되는 시간이었고 나 역시 그 따뜻함에 온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찬연한 순간들은 내 마음에 양분과도 같다. 어떤 형태로든 마음에 선물을 두고 가기 때문인데 오렌지색 햇빛은 내게 따뜻함과 평온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여름이 오기 전에는 오후 5시쯤이면 세상은 금방 따뜻함을 입었고 그 이유로 난 오후 5시를 가장 좋아했다. 그 시간이 주는 포근함이 좋아 오렌지색에 염색된 풍경에 푹 잠겨버리고 싶은 적이 많다. 특히 산책을 할 때 더 그렇다. 동기와 대화를 한 장소도 산책하다 앉게 된 벤치였는데 오렌지색 햇빛에 속절없이 물들어 버리는 나뭇잎들은 장면의 분위기마저 바꿔버린다.


문득 생각했다. 다른 장소에서 오렌지색의 햇빛을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될까? 그리고 누군가의 찬연한 순간 속에도 오렌지색 햇빛이 들어있을까 하고 말이다.



* 번외 [오후 5시의 동네 공원]


오후 5시에 동네 공원을 산책할 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또 다르다. 이곳은 키 큰 벚나무가 많고 작은 동산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나있는 나무들은 날이 더워졌다고 잎사귀를 무성히 성장시켰는데 이 나뭇잎들은 염색되지 않고 빛의 길이 되어준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들어차는 빛은 그 잎이 살랑일 때마다 길을 바꾼다. 같은 장소일지라도 매일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이유다. 오렌지색 빛이 얼굴을 훑는 것을 느끼면서 그 평온함과 함께 오르막을 걷는다. 산책은 보통 1시간 정도 이뤄지는데 여러 생각들을 하다 내뱉어진 가쁜 숨과 등줄기의 땀을 느끼면 하늘을 본다. 노을은 짙게 깔린지 오래, 하늘은 어느새 소라색이 되어있다. 오렌지색 빛이 주변을 물들일 때는 존재감을 숨길 수 없지만 나타날 때나 사라질 때는 조용하다. 공원을 올라갈 때는 반짝거림이 가득한 풍경을 내보였다면 산책을 마치고 내려갈 때는 오렌지빛 하늘과 함께 귀가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소라색 하늘이 달을 데리고 찾아오면 빼꼼해진 노을을 본다. 낮이 길어졌으니 이제는 더 오래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을 작별의 선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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