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한가요?

by 하늘자까

손에 꼽을 만큼 한가한 월요일 아침이다. 사무실에는 클래식이 잔잔히 흐르는데 편안한 적막감이 느껴진다. 삶에서 차곡하게 쌓아가는 이런 평온함이 좋다. 사소한 것들이 뭉쳐 행복으로 다가올 때, 온전히 느끼는 것으론 부족하니 이 순간을 기록해야겠다.


좋은 음악, 편안한 적막감, 한가함. 이 세 가지를 통해 오늘의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하나 이러한 조건들이 언제나 내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 느꼈던 행복의 조건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하는데, 이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고, 어리숙한 자아를 가지고 있던 나는 외부 자극에 쉽게 노출되었고 터질듯한 기쁨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미숙한 경험을 토대로 성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밀려오는 자유에 도취된 나는 강한 자극들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며 행복(당시 기쁨과 행복의 개념을 혼동하던 때였으므로)을 채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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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에 맞이한 첫 번째 자극은 록(Rock)이었다. 친구가 봉사자로 일하던 록 페스티벌에 놀러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는 탁 트인 야외무대, 가슴을 둥둥 울리는 음악 소리와 눈치 보지 않고 한껏 리듬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경하게 바라봤다. 록 문외한이었지만 그 분위기가 좋아서 “나도 같이 이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라는 강한 열망을 안고 록 음악에 함께 젖어 들어갔다.


록 페스티벌의 짜릿한 흥분은 강렬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이런 게 어른의 행복인가 싶어서 한동안 록 페스티벌을 전전했다. 한 시즌을 그렇게 없는 에너지까지 끌어 쓰다가 방전되어 다시 얌전한 대학생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곧이어 두 번째 자극이 찾아왔다. 그것은 K-pop이었다.


록 페스티벌의 열기를 몸이 기억해서일까. 아니면 대입을 위해 인내해야 했던 나의 어린 날들에 대한 보상 심리였을까. 동경하는 아티스트들을 집에서만 바라보기엔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더구나 고등학교부터 얌전히 공부만 해오던 친구도 같이 K-pop에 눈을 떴고, 우린 함께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힘차게 응원을 하고 나면 목이 다 쉬어버리기 일쑤였지만 그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상념, 고민, 불안 가운데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이토록 좋아해 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에 벅차오르는 마음뿐이었다.


하나 미완성의 자아가 미성숙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탐하는 행복은 손에 쥔 모래알같이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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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허함을 함께 지고 가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다. K-pop를 좋아하는 내 마음은 특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고 이 군중 속에 내 위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들, 터질듯한 함성에 묻혀 모든 고민을 잊었던 시간들. 나는 분명 그 속에서 기쁘고 즐거웠는데, 어째서 공허함은 끊이지 않고 나를 짓누르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제야 내가 지금 행복한 상태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을 위한, 아직 미완성된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태동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감각이 떠올랐다. 그 후, 강렬한 자극에 쏟았던 시간을 덜어내어 내가 진짜 원하는 행복을 찾는 일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록과 K-pop이 내게 준 추억과 에너지가 남아있었기에 그것을 원동력 삼아 근 4년 간 내 성향과 반대되는 일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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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자질구레하고, 억울하고, 상처 받았던 나날들을 보내고 나서야 행복에 관해 한 마디 할 수 있게 됐는데, 그것은 “글 쓰면 행복해”이다. 이 한 마디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간들이 조금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진로도 더 탄탄하게 설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것은 강한 자극, 터질 듯한 기쁨보다 좋은 음악, 편안한 적막함, 한가함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앞으로의 시간들은 그렇게 채워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행복의 조건을 하나 더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온전한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길은 저마다 다르지만, 언제 그 끝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여정에서 찾아오는 행복을 알아채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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