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가 죽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우연히 보게 된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라는 책의 페이지를 매일 조금씩 넘겼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장을 넘기면 고전을 계속 만나게 되는데 나는 앞서 말한 카프카의 변신 이후에 그리스인 조르바도 지상의 양식도 페스트도 라쇼몬도 원칙도 인간의 대지도 거기서 나오는 대부분의 책들의 이름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일단 넘겼다.
아. 박경리 토지를 말했을 때 토지 서문만큼은 꼭 한 번 다시 읽었다.
그러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라는 처음 듣는 이름 다음에 소개되는 작가는 바로 그 유명한 톨스토이 였고. 그렇게 그의 책들 중 또 한 번 처음 듣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라는 소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글의 마지막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92쪽 밖에 안 된다 하루면 충분히 읽는다 그리고 읽는 동안 당신의 삶도 함께 펼쳐지리라. 그리고 알게 된다. 당신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2025년. 마흔 넷이라는 숫자에 이르고서까지도 삶의 방향을 운운한다는 것이 어쩐지 겸연쩍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나는 곧 이반 일리치에게 갔다.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 표도르 바실리예비치, 표트르 이바노비치.. 첫 페이지부터 길고 어려운 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어려운 이름들의 고비를 넘기면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2장> 첫문장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인생. 그런데 그러면서도 가장 끔찍한 인생?
이반 일리치는 고등 법원 판사였다. '법률 학교 시절부터 이미 유능하고 명랑하고 상냥하고 사교적이었으며 의무로 여기는 일은 철저히 이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권력을 의식하고 그러나 그것을 부드러이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즉 그의 인생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러한 모양으로, '가뿐하고 유쾌하고 점잖게' 흘러갔다.
어찌되었든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직 삶의 테두리 안에 있는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아까 말했던 길고 어려운 그 이름들이 바로 그들,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이다.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모두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이 판사들 당사자나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였다. '이제는 분명히 내가 시타벨이나 빈니코프의 자리로 가겠군.' -이반 일리치의 죽음 <1장>
얼마전 아이의 생일을 맞아 아이의 할머니와 고모가 우리집에 왔다. 고모를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모, 뽀로로 초코 케이크, 네모 세모 둥근 자석블록 6세트, 토마토 치즈 피자, 젤리까지 함께 한 그 날은 특별히 더 즐거운 날이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할머니, 고모, 아빠 그러니까 나의 시어머니, 형님, 남편은 남편의 작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 장례를 치른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아니 OO이를 데리고 바로 은행에 가자고 그랬다는 거야."
"그 전에 보험을 그렇게 많이 들어 놓았대."
그러니까 (남편의) 작은 아버지의 아이의 진짜 엄마는 오래전부터 같이 살지 않았고 그 자리에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바로 그 새엄마가 그의 남편이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얼마전과 직후에 이런 저런 행태들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 머릿 속엔 얼마전 OO이의 결혼식날 본 남편의 작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무척이나 마른 몸. 말기 암 환자라면 모두 비슷한 몸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OO이와 나란히 버진로드를 걸을 때 그의 얼굴은 단단했다. 그리고 함박미소. 4살 아이에게 보여준 얼굴은 지금껏 내가 본 수많은 얼굴 모양들 중 가장 환하고 밝았다.
그 빛은 사라졌고 남은 이들은 그저 이야기할 뿐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죽었다" 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마치 우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 않냐는 무표정한 표정을 남긴다. 누군가의 죽음은 도리어 나의 살아있음을 되새기는 방증 같은 것일까.
(중략) 이 죽음으로 인해 각자의 머릿속에는 직장 내의 인사이동과 가능할 법한 변화에 관한 생각만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 자체는 늘 그렇듯 부고를 접한 모두에게 내가 아니라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어쩌겠어, 죽었는걸.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