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살아야 할 삶 2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이반 일리치가 죽어간다

by 김꾸미

92쪽밖에 되지 않아 하루면 읽는다는 이 책을 나는 143페이지로 늘려 읽어 그랬는지 몰라도 (밀리의 서재는 글자 크기, 줄 간격, 여백 등을 조절할 수 있다) 하루보다는 더 걸려 읽었다. 총 12장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은 그의 죽음도 삶도 아닌 이반 일리치 그의 "죽어감" 이다.




이반 일리치가 죽어간다


우리는 종종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삶에 대해서는 보통 열렬히 찬양되어지고 죽음은 생각보다 쉬이 내버려두는 편이다. 그리고 죽어감. 그것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떤 이가 끙끙 앓는 것, 끙끙 앓으며 보내는 시간, 끙끙 앓으며 보내는 시간 동안에 생각하는 그의 생각, 끙끙 앓으며 보내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며 하는 그의 행동...

이런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뭔가 끔찍하고 낯선 것,

(중략)결코 들어 본 적도 없는 것이 그의 내부에서 생겨나 끊임없이 그를 빨아먹고 사정없이 어디론가 끌고 가는데 어찌 이토록 끔찍하고 무서운 뭔가가 제일 신나는 농담거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중략)그렇게 그는 자기를 이해하고 동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파멸의 벼랑에서 홀로 살아야 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장>




그는 그의 병이 온전히 그만의 것이라는 것을 죽어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의사 앞에서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그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병으로 인하여 그 자신이 죽는지, 아님 나을 수 있는지 그런 거 말이다. 그러나 환자를 앞에둔 의사는 오로지 그 병이 신하수증인지 아님 만성 카타르나 맹장염인지 그 논쟁만이 중요하다.

법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가 곧 없어질 사람인양 힐끗 보다가도 돌연 무슨 건강 염려증이냐며 그를 골렸는데 그들의 이 농담거리의 재료는 이반 일리치 그 자신에게는 매순간 느끼는 끔찍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병원의 의사, 법원의 동료들과 같은 또 다른 사람들. 이반 일리치의 아내와 딸도 다르지 않다. 단 일 초도 쉬지 않고 쑤셔 대는 통증에 대해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에게 말하였딸은 들었다. 그러자 그의 입속에서 나온 말들이 때마침 막 외출할 참이었던 두 여자의 주변에서 잠시 맴돌더니 곧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고 그녀는 옷을 입으러 움직였다.








그녀가 있었다

나의 외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엄마의 엄마.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그 곳에 있었다. 언제나 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의식은 없었다. 눈은 뜨고 있기도 하였고 감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눈동자가 보일 때 의식이 있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때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그녀의 눈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많은 딸 들 중 두 번째 딸인 나의 엄마는 그녀에게 "눈을 좀 떠 봐" 라고 어느 날은 말하기도 하였다.


나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녀를 보았을까. 그녀의 많은 자식들은 모두 각각 어떤 생각을 하며 그 7년의 시간을 더 보냈을까. (그녀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한 자리에서 그저 누워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어느 때에 담당의는 그녀의 자식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다시 의식이 돌아올 가망은 매우 희박합니다. 결정이 필요합니다.

아마 그때 나의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삼촌은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목에 구멍을 내고 인공호흡기를 달아 하루를 또 다음 날 하루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그 하루들이 칠 년의 시간을 쌓게 될지는 정녕 몰랐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다. 병원은 몇 차례 바뀌고 그녀 가장 가까이 있는 간병인의 얼굴도 몇 차례 달라진다. 그동안 큰 딸은 어떤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나의 엄마는 자신의 딸과 아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새 것으로 바꾸었으며 세 번째 딸 네 번째 딸 다섯번째 딸 그리고 한 명의 아들 역시 그들의 그 어떤 것들의 모양이 달라지거나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나의 할머니 만이 아무것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때는 왼쪽으로 모로 누워 있다가 또 어느 때는 오른편으로 누워 있는 것이 그녀가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움직임이었다. (그 마저 그녀 한 평생 처음 보는 낯선이- 간병인의 손에 의해서 그녀 자신의 몸뚱이가 이리 저리 옮겨졌다)


나는 그때 아마 집을 떠나 아니 도망쳐 서울의 어느 작은 공간에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가끔 (무슨 일이 있을 때에 어쩔 수 없이) 집을 찾곤 했는데 한 번은 집에 가기 전 나의 할머니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해 내가 보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베개를 하나 장만하여 그것을 할머니의 머리 밑에 두었다.









가장 끔찍한 것

내가 이반 일리치를 만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다름 아닌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반 일리치의 삶을 두고, 이야기의 서두에 밝힌 바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가장 끔찍하다" 고 하였으니 그의 삶의 내용은 내가 찾고 있는 마땅히 살아야 할 그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가 시골을 떠난 목적은 단 하나, 연봉 5000루블짜리 자리를 얻는 것. 부서가 어디든 업무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오직 5000루블. 비단, 흑단, 꽃나무와 양탄자, 청동 조각품, 특정 부류 사람들이 또 다른 특정 부류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어서 갖추는 것들.


가뿐하고 유쾌하고 점잖게 흘러가는 것.


그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란 결국 오직 그가 언제 자리를 비워 줄지, 그의 존재로 인한 저 억압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언제 해방될지. 또 그가 언제 저 고통에서 놓여날지에 쏠려 있다는 것.


더더욱 이반 일리치를 괴롭힌 것은 아무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불쌍히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거짓이야말로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을 독살하는 가장 무서운 독.


다시 일 분, 또 일 분이,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지나가고 계속 똑같고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것. 제일 두려운 것은 피할 수 없는 종말...

-이반 일리치의 죽음 <3 - 8 장>




"가장" 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의미가 없을만큼 모든 것이 끔찍한 "가장 끔찍한" 그 모든 것들이 계속해서 튀어 나왔다. 그의 삶 속에서.


나는 어떠한가. 나의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였고, 그것들은 단순하고 평범하고 끔찍하여 나는 곧바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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