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살아야 할 삶 3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할머니는 언제 별이 돼요?

by 김꾸미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망쳤다는 의식을 지닌 채 삶을 떠난다면, 그걸 바로잡을 수조차 없다면 그때는 뭐지? (중략)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1장>



그렇다면 가장 끔찍한 삶의 모양이 바로 위 (마땅히 살아야 할 삶 2 -이반 일리치의 죽음 <3 - 8 장>)에서 말한 그 모든 것들의 총합쯤 된다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모양은 무엇이지? 스스로에게 묻기 전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를 쓴 작가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나로부터 남으로의 전환. 자유의지가 없던 이. 웃기는 고명환이라는 평 속에 갇힌 날들을 뒤로하고 그가 얻은 깨달음은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어느새 이반 일리치에게 점점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9장에 이르러서 그는 통증에 꿈쩍하지도 않고 누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최초로 계시가 들렸다.

"너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그리고 그 계시는 나에게도 들렸다. 나는 곧 드디어 내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한 어떠한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의 죽음의 순간들과 함께 하길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12장을 채우고 있는 글자들을 먹어 치우는 동안 나의 숨은 마치 멎은 것만 같았다.






그렇다 전부 그게 아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장>

전부. 전부다, 진짜가 아니었다. 진실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모든 것이 가짜였다. - 나의 해석



여전히 '그것'을 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장>

죽기 직 전이지만 여전히 다행히도 나는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택할 수 있다. 내 삶이 훌륭했다는 의식을 놓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아직 기회가 있다. 바로 잡을 수 있다. - 나의 해석



그때 누가 손에 입을 맞추고 있음을 느꼈다 눈을 뜨고서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이 가엾었다 아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코허리와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엾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장>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아들과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그것을 말하고 싶다. - 나의 해석


죽음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공포도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12장>

나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죽지만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바로 빛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죽기 바로 직전 가짜를 벗어던지고 진짜 나로 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이렇게나 기쁘다. - 나의 해석







나는 방금 전 마치 동시통역사라도 된 양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을 옮기는 동시에 곧바로 나의 언어로 다시 타이핑했다. 그러니까 나의 해석이라는 저 말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12장을 두 번째 읽었을 때의 것들이다.


'그것은 더 이상 없다.'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죽음에 다다른 이반 일리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그래서 무엇인가? 결국 그가 본 빛이란 무엇인가? 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가?"와 비슷한 물음들이 남았다.


그 어떤 이가 내린 답은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답은? 내가 마땅히 살아야 할 나의 삶은?


진짜 나의 모습은? 진짜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삶은?

나 역시 가짜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내가 아직 여전히 할 수 있는 '그것'은? 나의 그것은?

나는 용기를 낼 수 있나? 아니 꼭 그래야만 하나? 그러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인가?

숨는 것은 어떤가? 숨는 것은 나쁜가?

언제나 진실을 직시해야만 하나? 언제나 올바르게 그것들을 바로 잡아야만 하나?

올바른 것이란 건 무엇이지? 삶에서 올바르게 지켜야 할 것이 정해져 있나?

나는 그것들을 지키고 있나? 그것들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어떤 이의 예상과는 달리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답을 내리지 못한 나의 두 눈은 그만 뒤편의 책장을 서성거렸고 거기에는 언제부터 꽂혀 있었는지도 모를 톨스토이 단편선이 있었다. 그 톨스토이는 때마침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쓴 톨스토이와 같은 이었고 이 단편선 첫 이야기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나에게 단비를 내려줄 듯하였다.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더욱이 '단편'이니 읽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 별이 돼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떤 구두장이 세몬, 그의 아내 마트료나, 낯선 사나이 미하일을 만나고 그들이 함께 하는 시간을 옆에서 슬쩍 볼 수 있는 기회를 운이 좋게도 얻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를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을 때에 비해 비교적 간단히 얻었다.


그런데 사실상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뜻밖의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에 대해서 잠시나마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27페이지의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라는 구절을 보며 나의 머릿속은 재빠르게 바로 며칠 전을 회상하였다.



...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젊은이가 싱긋 웃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선 p.27-




얼마 전 5살 생일을 맞은 아이는 생일 다음 날 잠자리에서 나에게 말해주었는데.


"엄마,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고~ 언니가 되고 학교에 가고~어른이 되고~ 그다음 할머니가 되고~ 그다음.. 별이 되는 거지~~~!!!"

마치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식이었다.


정황은 이랬다.

아이의 생일 당일 오후, 할머니와 꽤나 길게 말을 나누던 중 아이의 입에서 느닷없이 말이 튀어나온다.


"할머니는 언제 별이 돼요?"


"... 할머니 언제 죽느냐고~?" 대꾸하는 나의 엄마의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하였으나 속으로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아직 '죽음'에 대해 가르쳐 준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 아이의 엄마로, 나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화면에서 아이의 할머니 얼굴이 사라지고 나는 아이에게 그게 도대체 어떤 뜻이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마땅한 답이 없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잠자리에서 내 오른편에 누워있던 아이는 아주 또박또박 목소리를 돋우며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은 나는 이윽고 정말 오랜만에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그러니까 아이의 말은 다름 아닌 나의 말이었다(!) 언젠가 내가 아기부터 어린이, 청소년, 성인을 거쳐 노인의 모습까지 주욱 옆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책을 보여 주며 사람의 일생에 대해 설명해 준 말이었던 것이다. 그 때 노인 다음에는 그림이 없었는데 아이가 그 다음은? 이라는 질문을 했고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엉겁결에 그 다음은 별이 되지~ 라고 했던 것이다.

아이는 할머니와 오랜만에 말을 주고받다 불현듯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다음 단계(?)인 별이 언제 되는지가 순수하게 궁금하여 물었던 것이었다.


암튼 그때 아이의 왼편에 누워 있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주 쾌활하게 웃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조금은 누그러진 마음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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