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an : 다정하고 어린애 같은 호칭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이방인 2부 5장
나는 이방인을 읽었다.
2021년 이후에 한 번 더 읽었으니 두 번 읽은 셈이다.
어떤 남자가 전보를 받았다.
그의 엄마가 죽었다는 아주 짧은 내용.
그는 그의 엄마에게 간다.
졸리고 피곤한 가운데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곧 다시 일상이다.
그러다 어떤 이를 죽인다.
빛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행보를 보인 한 남자. 뫼르소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부조리, 실존주의, 책 뒤편 작가와 작품 세계에서 제시하는 인생에서의 모순, 반항, 의식의 단절, 나무위키에서 볼 수 있는 사르트르의 해석 등을 살펴보며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오늘 어쩌면 어제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의 엄마를 그가 떠올리고 생각하는
많지 않은 장면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2021년에 처음 뫼르소를 만났을 땐 미처 알지 못했는데 바로 위와 같이 원문에서는 엄마를 maman라고 하였고 이건 바로 '다정하고 어린애 같은' 호칭이라고 했다. (나무위키에서 이방인에 대해 쓰인 글을 읽다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뫼르소의 삶 내내 어딘가 그것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하물며 자기가 살인을 벌이고 만난 예심 판사의 말쑥한 얼굴, 푸른 눈, 회색 수염 따위를 관찰하는 것에 그의 감각을 집중시킨 나머지 그에게 '그럭저럭 호감을 가질 수 있을 듯' 하여 방을 나서면서는 예심 판사에게 손을 내밀려고까지 했는데 그런 마음이 이상하다기보단 그러면서 뫼르소는 그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을 만큼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니까 심지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까지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거다. 다소 그 모든 것들이 귀찮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기계는 아니고 인간이기에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모종의 감정을 내비치기도 하였는데. 이를테면 마리, 어머니, 셀레스트에게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로 나를 사랑하냐는 물음과 결혼할 마음이 있냐는 물음에 사랑하지는 않는다 결혼은 원한다면 해도 좋다라고 마리에게 답했던 뫼르소가 그 어떤 날에는 마리와 결혼할 것을 진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머니.
(사실 뫼르소의 이야기는 꽤나 놀라운 문장을 읽지 않으면 시작될 수 없는데 그것은 엄마의 죽음. 오늘 또는 어제 죽은 엄마. 그런데 엄마의 죽음에 대해서도 물론 큰 동요가 없는 그의 태도와 감정이 훗날 뫼르소에게 사형을 집행받게 한 가장 큰 근거처럼 쓰이게 되는데 사실은 정말로 빛 때문이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양로원에 있는 엄마에게 가는 건 일요일을 허비하는 기분이었고 (따라서 가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 붉은빛이 가득 퍼진 때 '어머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 얼마나 즐거울까'라는 생각을 했고 인부가 묻는 엄마의 연세에 '꽤 많으셨습니다' 대답했고 엄마의 장례식이 모두 끝이 나 버스에 탄 그가 알제 시가지를 보며 '이제 드러누워 실컷 잠을 잘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무엇보다, 특별히 어머니와 절친했던 토마페레라는 노인이 흥분과 슬픔으로 그의 뺨을 눈물로 적시는 동안에도 뫼르소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라고 예심판사의 물음에 뫼르소 그 자신이 답한 것처럼 그는 어머니 장례식 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졸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늘 밑으로 보이는 언덕까지 잇달아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 숲이며 검붉고 푸른 땅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그린듯한 집들을 통해 어머니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방인 1부 1장
그의 침대가 뻐걱거렸다. 그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야릇한 소시로 나는 그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왜 그때 어머니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방인 1부 4장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이방인 2부 2장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띠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방인 2부 5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방인의 첫 문장은 꽤 충격적이었다. 2021년에.
그런데 뫼르소 그가 어머니를 maman으로 부른 것을 알게 된 2025년의 이방인의 첫 문장에도 나는 좀 당혹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아! 셀레스트.
어머니 이야기가 길어져 자칫하면 그가 셀레스트에게 느꼈던 인간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을 빼먹을 뻔하였는데 그건 뭐 뫼르소의 재판장에서의 한 순간이었다. 배심원으로서 참석한 셀레스트의 말과 몸짓이 확실히 뫼르소 그 자신을 위한 성의라는 것을 느끼고 '한 사람의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이 생전 처음 우러났던' 일인데 셀레스트 이야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며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또 귀찮기도 하여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라고 잠시 뫼르소처럼 말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