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98%쯤 된 것 같아.
“이래서 내가 걸을 수 있는 게 맞아?”
재활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반 병실로 내려오기만 하면 곧 재활이 시작되고, 금세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교수님 회진 시간마다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팔도 들어 보이고, 다리도 번쩍 들어 보이며
"할 수 있어요, 저 재활해도 돼요"라고 눈으로 어필하곤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따낸 재활의 시작은, 상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침상 생활이 길어 선 채로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웠고,
때론 다리에 끈을 묶고 세워두기도 했다.
그 광경은 마치 SF 영화 속 실험실 같았다.
‘이거 혹시 고문인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처음엔 다리 근육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전기 자극 치료기를 붙이고, 재활 자전거도 탔다.
전기 자극은 아팠지만,
그 고통조차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신호 같아서
“수치 최강이요!”를 외치며 버텼다.
재활 자전거는 특히 왼쪽 다리의 움직임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오른쪽 다리가 억지로 페달을 밟게 하면서
왼쪽 다리가 ‘움직이는 법’을 기억하게 된다고 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단순한 훈련 속에서
'정말 내가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자라기도 했지만,
재활 선생님이 “이제 설 수 있어요”라고 말했을 땐
기꺼이, 아니, 무서워서 와락 선생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놔주지 못했다.
“걸을 수 있다”라고 하니,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홀로 걸어오라 했다.
그때 처음 걷는 걸음마를 내디딘 나는
진심으로 세상 모든 아기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지팡이를 짚게 되니 안정감이 생겼고,
예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내가 넘어지면 너무 무거워서 선생님들이 못 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원무과 앞을 지나가다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부딪혀
뒤로 넘어질 뻔했는데,
바로 그 순간—
재활실 선생님이 뒤에서 나를 받아주셨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선생님들을, 내 몸을, 그리고 이 재활의 여정을
조금 더 믿게 되었다.
물론 그 믿음으로 무리를 하다
재활 기구 위에서 기절을 해버리기도 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운동은 죽을 것 같을 때 하나 더 해야 진짜지” 하는 말을 떠올리며
눈앞이 노래질 때까지 참았고,
결국 선 채로 쓰러졌다.
선생님들이 걱정하며 달려왔고,
“운동은 눈앞이 노래질 때까지 참았어요”라는 나의 한 마디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금은 예전이랑 달라요. 몸이 예전 몸이 아니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정말로 달라졌구나, 실감이 났다.
그리고 그때,
기절한 내 얼굴보다 더 걱정으로 가득한
막내 선생님의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와… 나 진짜 조심해야겠구나.’
놀란 막내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 괜히 민망해졌다.
그래서 실없는 농담을 꺼냈다.
"선생님 내덕에 공짜 미백 짱이네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환자분이 더 하얗게 질리셨어요."
와… 몇 백씩 들여도 안 하얘지던 피부가, 난 단번에 하얘졌다.
"최고이죠?"
나는 다시 한번 실속 없는 소리를 던지며, 그 상황의 심각함을 농담으로 덮었다.
‘그래, 사고는… 선생님들 앞에서만 치자.’
물론, 하얘지려고 돈 써본 적은 없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도가 100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그 뒤로도 담당 선생님과 투닥투닥 장난을 주고받으며 재활을 이어갔다.
그래서일까, 그 시간은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어느 날, 함께 치료받던 환자 한 분이 더 잘하는 재활병원이 있다며 같이 가보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거기 가서 또 신뢰도를 0부터 쌓느니, 지금 이곳에서 계속 받고 싶다.'
내 몸을 믿게 해 준 이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