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이면 다 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 일반 병실의 평균 연령은 내 나이보다 곱절은 높았고, 그 안에서 나는 누가 봐도 막내였다.
긴 시간을 지나온 어르신들 사이에 낯선 얼굴로 들어선 나는, 그들에게 어느새 연민 어린 눈빛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누구는 나를 보며 손주를 떠올렸고, 누구는 딸을 떠올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틈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624호 가족’이 되었다.
가족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수시로 변했다.
어떤 날은 소란스러웠고, 어떤 날은 눈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늘 즐거웠다.
새벽녘, 치매 할머니가 부르는 끝나지 않는 노래는 병실을 피곤하게 했지만,
“영배야~ 영배야~”
크게 부르시는 이름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태양 팬이신가 봐요… 본명을 그렇게 애타게 부르시네. 노래라도 틀어드릴까요?”
얼토당토않은 농담에 웃음이 번졌고,
언젠가 그분들이 퇴원하며 내 손을 잡고 “얼른 나아”라는 인사를 남길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게 더 많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내에서도 최고령이라는 ‘왕할머니’가 우리 병실로 오셨다.
나와는 무려 70년 차이.
막내와 최고참 사이, 우리는 어떻게든 잘 지냈다.
왕할머니와 나는 의료진 몰래 간식을 나눠 먹었고,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건 아몬드 초콜릿.
하지만 할머니는 이가 없어 씹지 못했고,
결국 천천히 입안에서 초콜릿을 녹여 드셨다.
우리에겐 그게 비밀이었다.
그래서 초콜릿은 ‘콩’이 되었다.
“할머니, 콩 먹고 같이 운동 가요~”
그 말을 들으실 때마다, 왕할머니는 웃으셨다.
다 먹고 나면 ‘뽁’ 하고 입에서 빠져나오는 아몬드 처럼,
콩은 왕할머니와 막내를 잇는 인연의 고리였다.
그 작은 한 알은 지루한 병원생활 속 우리의 작은 즐거움이였다.
왕할머니는 어느새 보행보조가를 짚고 걷기 시작하셨고,
내가 퇴원하던 날엔 눈시울을 붉히셨다.
물론 운동은 여전히 싫으시다고하신다.
며칠 뒤, 왕할머니도 건강하게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엔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퇴원 후엔 단팥죽에 푹 빠지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