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의 관계

by 길잃은 바다거북

사람과의 관계는 냄비와 닮았다.
펄펄 끓을 땐 뜨겁고, 김이 자욱해 시야가 흐려진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안 보인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마구 담아버린다.
단맛도, 짠맛도, 매운맛도.
그게 어떤 맛으로 완성될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 사이로 흘러나오는 향기만으로도
배가 고파진다.
냄비 안이 다 익기도 전에
그 향기에 취해 허겁지겁 먹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혀를 데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짜 맛은
그 모든 끓음이 지나간 뒤에야 느껴진다.
한 김 식고 나서야
그게 무슨 맛이었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그제야 천천히 알게 된다.

우리가 맺는 여러 관계 중
지금 눈앞에 놓인 그 냄비가 언제 식을지는 알 수 없다.
100도의 사랑이 담긴 냄비와
70도의 가족 유대가 담긴 냄비는
식는 속도도, 식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그러니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보자.
언제쯤이면 들여다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이 관계의 참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까.

냄비가 식기를 바란다고
덜컥 찬물을 끼얹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니까.
그 모든 온도에는, 그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성급함으로
그 맛을 흐리지 않도록.
이제는 조금, 찬찬히 들여다보자.
김이 걷히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쯤.
비로소 보이는 그 사람의 온도와 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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