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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Jul 10. 2018

여기... 버거집 맞아요?

공사는 겨울에 해야 제맛

동양의 미를 뽐내자 

풍류랑은 풍류랑 다운 버거를 팔기 위해 집중한 브랜드이다. 그래서 가능한 우리 다움과 어울리는 공간은 어떠한지 고민하다 한옥에서 매장을 오픈할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서촌과 북촌, 익선동과 종로,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한옥에서 매장을 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남아있는 한옥도 몇 채 없었고 보존 상태도 문제였다. 그리고 정부의 교체로 인한 부동산 시장이 맞물려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매장을 내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구나! 


그래서 우리는 장소에 대한 방향을 틀기로 했다. 기존에 버거 문의를 하시는 vaskit 손님들이 많이 있었고 재료 조달이라던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재 vaskit 건물과 멀지 않은 곳에 매장을 내기로 결정했다. vaskit 매장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으로 움직이기에도 편리했고 손님들에게 안내하기도 쉬었다. 


초반에 기획한 문서들. 지금 보면 참 귀엽다.


풍류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류를 읊을 공간으로 내부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깔끔한 젠 스타일을 기본으로 심플함을 가져가되 나무를 많이 쓰기로 했다. 젠(zen) 스타일이란 단순한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뜻한다. 일본식 발음으로 ‘선’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심플하면서도 딱 떨어지는 나무의 선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느낌이 풍류랑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기름진 미국 느낌의 버거가 아닌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의 우리 버거가 잘 섞일 수 있는 느낌이었다.(이건 내 욕심이기도 하지만 풍류랑의 세계 진출을 위해서도 동양의 미를 뽐내고 싶었다.^^) 


 

한국의 전통, 그리고 교토. 

인테리어 콘셉트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영감을 받기 위해 궁 산책을 자주 즐겼다. 당시 나는 대학로에 살고 있어서 걸어서 창덕궁이 멀지 않았다. 종로구민으로서 궁 할인 혜택과 무료입장의 호사도 누렸다. 내가 풍류랑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리워하는 님을 생각하듯 매일 풍류랑에 대해 생각했다.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방랑 시인 김삿갓이 떠올랐다. 이런 부분도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하고 메모해 두었다.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한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취하면 걸어두고 꽃구경 

흥이 나면 벗어두고 달구경 

속인들의 외관은 겉치레, 체면치레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내사 아무 걱정 없네 


- 김삿갓 시



디자이너는 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궁을 자주 오다 보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색의 조합이 참 세련되었다고 처음 느꼈다. 문양은 딱 떨어지는 것이 완벽한 패턴이었다. 기와의 그림자의 선도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거꾸로 기와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풍류랑 버거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맛으로 오래가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하고 사색에 잠겼다. 



그렇다. 많이 보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젠 스타일을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교토에 갔다. 교토는 일본의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뜨거운 교토의 햇빛을 친구 삼아 리서치에 돌입했다. 하루는 젠 스타일이 눈에 보이는 호스텔에서 잠이 들었고 하루는 전통 가옥에서 머물렀다.  


 

주차장 귀퉁이에 위치한 위캔더스 커피


기억에 남는 곳을 두 곳을 소개하자면 주차장에 위치한 위캔더스 커피. 위캔더스 커피야 말로 풍류와 사색을 즐기기에 조용한 장소였다. 매장은 작기 때문에 스탠딩으로 커피를 즐겨야 한다. 커피를 들고 나와 작은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완벽함을 선사해줬다. 초록 잎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다른 한 곳은 before 9이라는 펍이다. 나무로 디자인된 내부 인테리어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깔끔하게 디자인된 부분들이 교토의 전통과 현재 일본의 현대적인 요소와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특히 테이블이나 스탠딩으로 설치된 부분들이 풍류랑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교토를 다니며 정육점과 귀여운 일러스트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런 작은 디테일들도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나중에 풍류랑이 잘되면 버거 투어를, 감성 고기가 잘되면 전 세계 정육점 투어를 해보고 싶다. 

꿈은 이루어진다. 오예!


 

공사는 겨울에 해야 제맛!

2017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브랜드를 완성해주는 중요한 요소 중 공간이란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나의 20대는 공간 보물 찾기의 시간이었다. 그 음식이 좋아서, 그 옷이 좋아서, 그 음악이 좋아서, 그 그림이 좋아서, 그 브랜드가 좋아서 간 경우도 많지만 공간이란 매력을 찾아 전 세계를 활보하고 다닌 것 같다. 공간의 경험을 통해 브랜드의 빅팬이 될 수 있다. 풍류랑이란 공간에서 버거를 먹으면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 


이런 도면이 100장 정도 있다. 


23평 남짓한 공간의 도면을 설계하는 일로 본격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했다. 도면을 짜는 일은 고민과 결정의 반복이었다. 공간 활용을 어떻게 할지, 좌석을 몇 개 더 추가할 수 있을지, 손님들의 불편함은 없을지, 일하는 동선은 편한지- 매 순간의 결정은 고3 수능 때보다 떨렸다. 맞는 선택일까? 실제 구현이 된다면 괜찮게 보일까?


나와 함께 해준 고체 난로


 

추위에 타일이 떨어졌다.


제일 큰 문제는 추위였다. 한파가 몰려와 난로를 계속 피웠다. 고체 연료를 전국에 수배해서 한편에 쟁여두었다. 행여나 벽돌이 떨어지지 않을까, 타일이 잘 붙지는 않을까 매일 밤 긴장의 연속이었다. 밤에 전화라도 오면 철렁했다. 다행히 큰 일은 없었지만 대표님께 선언했다. 겨울 공사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또 겨울 공사를 하게 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공사는 겨울에 해야 제맛이지!


 

아쉬운 마음은 버거로 달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풍류랑 인테리어는 너무 어려웠고 힘들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느낀 어려움 몇 가지를 토로해보고 싶다. 


1.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전문적으로 인테리어를 전공한 입장이 아니다 보니 실제 구현과 디테일면에서 지식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했다. 기깔나는 콘셉트를 짤 수 있으나 실제로 설계하는 입장이 아니다 보니 구현이 가능할지 몰랐다. 또한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수백 번 체크를 했다. 다행히 공사를 함께 진행해준 나의 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말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와 함께 마신 겨울의 소주는 잊지 못할 것이다.


자동문의 크기가 감이 안 와서 거기에 맞는 사이즈를 보러 직접 돌아다녔다. 약간의 민폐를 부렸다. 키가 큰 친구를 데려다 줄자로 사이즈를 쟀다. 풍류랑의 바닥은 이탈리아 테라조 대리석 바닥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대체할 품목이 없는지 샅샅이 파헤쳤다. 나무로 제작한 가구가 어떤 느낌과 디테일을 만들어낼지 몰라서 카페를 돌아다니고 돌아다녔다. 


말로는 쉬었다. 상상한 공간을 말로 내뱉고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는 건 쉬었으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다 보니 당연한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게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풍류랑 가구 제작 중


 2. 디자이너 - 소비자 - 실무자 

나는 상업주의 디자이너이며 을의 존재로 일을 한다. 회사 안에서 디자인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고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디자이너의 진짜 역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최적의 문제 해결을 통해 최고의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것이 진짜 디자이너의 일이다. 비주얼을 예쁘게 만드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상업적인 무언가를 만들 때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바라보되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디자인이 만족감을 주는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 실제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는지, 동선은 완벽한지, 수납은 넉넉한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셰프가 손으로 그린 주방에 달린 나의 고민들


키친에서 일하는 셰프가 아니다 보니 그 영역만큼은 풍류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또 풍류랑 직원들도 자신이 일할 공간에 대한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다. 줄자로 재고 손으로 도면을 그리고 공사가 진행되는 중간에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오픈한 지 7개월 차에 접어들다 보니 아쉬운 부분들이 생겨났다. 손님의 입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려고 해도 완벽하지 못한 모습들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아쉬운 마음은 버거로 달랜다.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풍류랑 다운 경험으로 즐거운 한 끼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은 브랜드디자인에 관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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