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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별 Jun 19. 2018

초록 요정을 만나면
나도 고흐가 될 수 있을까?

베를린 공항에 내리니 오후 2시가 되었다.

쌀쌀한 3월의 공기가 느껴졌다.

짧은 일정이지만 두 번째 베를린 여행이라 확실히 자신감이 붙었다.

 

 

나에게는 프라이탁 가방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검은색 가죽재킷이 전부였다. 베를린에 가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겨우 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언제나 신나는 베를린. 대학교 선배 언니네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해서 짐은 최대한 가볍게 가져갔다.


서둘러 초록 요정을 만나러 갔다.   

 

 

베를린에는 전 세계 압생트가 모여있는 바가 있다.  

(압생트는 중독 성분 때문에 한국에서는 금지의 술이다.)



압생트는 19세기 유럽에 널리 사랑받은 술이다. 1750년대 스위스에서 처음 제조되었다.  


향쑥, 살구씨, 화향, 아니스로 만드는데 주 재료인 향쑥의 라틴명 압신티움에서 이름을 따왔다.  

알코올 도수가 40-70도로 상당히 높은데 저렴하였기 때문에 가난한 작가와 화가, 예술가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시작으로 샤를 보들레르, 기 모파상, 랭보, 모딜리아니, 피카소, 반 고흐, 오스카 와일드, 애드가 앨런 등 압생트를 사랑한 예술가들이 많았다.  

 

 

왜 압생트를 초록 요정이라고 부를까?

초록 요정은 압생트의 별명인데 탁한 녹색을 띠기 때문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압생트를 홀짝였다.
그리고 날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겼다.  
폴 고갱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반 고흐는 압생트 중독 증세를 보였다. 압생트에 취한 고흐가 환각을 보고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녹색 악마라고 전해진다. 20 세기 들어서 압생트의 중독 성분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서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지만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다시 부활했다.  


 


 

물에 희석해 마시는 압생트는 쓴맛과 특유의 아니스 향이 난다. 쓴맛을 해결하기 위해 은수저를 사용하는데 압생트 숟가락을 잔에 걸치고 잔에 각설탕을 올리고 천천히 차가운 물을 서서히 부으면 초록색이던 술이 뿌연 액체가 된다. 술의 도수를 희석시켜줄 뿐만 아니라 쓴 맛도 제거해 준다. 이 과정을 예술가들은 신성한 종교의식에 비유했다.


 

주인아저씨께 추천을 받아 압생트 한 잔을 시켰다.



 

압생트를 내릴때 쓰이는 은수저와 기구들



압생트 바의 내부는 빈티지함의 끝판왕이었다.

빈티지한 포스터와 벽지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하물며 계산대도 가죽으로 되어있어 멋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특히 압생트를 내릴 때 쓰는 은수저와 기구가 가득했는데 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고 다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샹송을 들으며 테이블에서 압생트를 혼자 즐기고 있으니 옆에 있던 독일 아저씨는 어디서 왔냐, 압생트 마실 줄 아냐 등등 관심을 많이 보여주셨다. 아무래도 검은 머리의 작은 동양 여자가 와서 압생트를 시켰으니 저들 눈에도 내가 신기했을 것이다.  


초록 요정의 힘이었을까?   

압생트를 한 잔 마시며 베를린에 있는 나를 생각하고 있으니 나도 고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압생트를 구매하면 큰 도장을 종이봉투에 찍어 담아준다.



압생트를 천천히 음미하고 기념으로 여기서 만드는 작은 압생트 한 병을 샀다.  

예술을 논하는(?) 나의 친구들과 나눠마실 생각으로.

종이에 압생트 바의 로고를 도장으로 찍어주셨다. 


초록 요정을 만나는 기쁨에 설레었던 시간이었다.

 


- 서울 사람들은 압생트를 마실 줄 아느냐?  

- 서울에서는 금지 술이에요.   

- 매력이 없는 도시네! 진짜 예술을 하려면 압생트 한잔과 시가는 필수야.  


 

압생트 한잔과 시가면 나도 고흐가 될 수 있을까?  

나도 랭보처럼 멋진 글을 쓰고 폴 고갱처럼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한남동 뒷골목에서 압생트가 들어간 칵테일 한잔을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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