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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Aug 27. 2020

가슴 속 사직서가 현실이 되기까지

이른 아침이 주는 용기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삼 년쯤 지나서였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어느 순간부터 나도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살았다. 내 잘못이 아닌 일들에 머리 숙여 사과하기가 억울할 때, 처리하는 일 보다 새로 주어지는 일이 많아 퇴근하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될 때, 가슴속에 품은 사직서를 만지작 거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언젠가 그만두고 말지'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나서 '내가 없어지면 엄마 아빠가 나의 소중함을 알겠지' 상상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퇴근길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 수 십 번 반복하며 들을지언정 정말로 사직서를 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회사를 위해 살아가는 게 점점 더 당연해졌고, 회사원이 아닌 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정말로 사직서를 내게 되기까지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먼저 얘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과의 신년회에서 매 해 그 해의 다짐을 하곤 했는데, 중국어 배우기는 N 년째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매 해 다시 등장하던 다짐계의 고인 물이었다. 서른이 되던 그 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잠은 심정으로 강남역 파고다 학원의 아침 반 수강 신청을 했다. 80% 이상 출석 시 회사에서 외국어 교육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 돈이 아끼기 위해 억지로라도 배우게 되리라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아침 7시에 시작되는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 6시에는 기상해야 했다. 아침잠이 유독 많았던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우려했으나, 회사에서 10만 원을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강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렇게 3개월 간 주 3회, 아침 해가 반 밖에 뜨지 않아 아직도 어두운 방에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괜스레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매일경제 신문을 소품 삼아 들고 집을 나선다. 일찍 일어나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마쉬며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골목길에 조심스럽게 첫 발자국을 찍는다. 과연 내가 탈 공간이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서 내려, 어느새 바쁜 하루를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 틈에 몸을 섞는다. 학원이 끝나고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8시 반. 평소 9시에 아슬아슬하게 출근 도장을 찍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낸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3개월이 나에게는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근처에 있는 작은 일 하나를 정해 실천해 보기를 추천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혹은 매일 명상하기, 술 줄이기, 무엇이든 좋다.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해낼 때 우리는 큰 힘을 얻는다. 반대로, 하기로 한 일을 계속 미루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개인적으로 큰 교훈이 되었던 어느 직장 동료의 카톡 대화명을 공유한다.


'내일이 바뀌길 바라면서 같은 오늘을 사는 것은 정신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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