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고 느낀 점

아름답기만 한 것도, 추악하기만 한 것도 없다.

by 사라리


요즘 시를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언니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추천했다.

16년 전 개봉된, 크게 흥행하지 못한 영화를 미국에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애플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9.99불을 내고 구매를 할지 1.99불을 내고 렌트를 할지 조금 고민하다가 구매하는 것을 선택했다. 마침 남자친구가 출장 중이라 혼자 시간이 남은 토요일 저녁, 무알콜 맥주를 동무 삼아 영화를 보게 됐다.



작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 교복을 입은 어린아이의 시체가 강물에서 떠내려오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멋진 모자와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 양미자 씨는 누가 봐도 멋을 아는 사람이다. 누군가 '멋있다' 칭찬하면 어린애처럼 호호 웃으며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사실 순탄치 많은 않다. 하나뿐인 손자 종욱과 둘이 사는 미자 씨는 형편이 넉넉지 않아 생활비 보조금을 받고, 추가로 파출 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연명한다. 하나 있는 딸과 매일 전화 통화를 하며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 관해선 소통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한다. 자주 말을 한다고 해서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님을 감독은 그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미자 씨는 우연히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 쓰는 수업을 듣게 된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오감을 활짝 열고 시상을 찾아 세상을 열심히 바라보던 와중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저 철없는 사춘기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종욱과 종욱의 친구들이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중생의 죽음과 연루된 것이 죽은 아이의 일기장을 통해 어른들에게 알려진 까닭이다.


가해자의 아버지들이 모인 자리,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크게 벌리지 않고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의논하기에 바쁘다. 여자애가 처음엔 좋아했다더라, 아직 앞길이 창창한 애들인데, 어른들끼리 마무리를 하자는 식으로 자기 자식들을 감싸고도는 그들의 모습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 한, 있었던 일이라 마음이 더 쓰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바로는, 밀양에서 실제로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


오직 미자만이 손자인 종욱을 위하는 마음과 불쌍하게 생을 마감한 피해자를 위하는 마음의 기로에 서서 괴로워한다.


'왜 그랬어, 너 왜 그랬어'


대사가 띄엄띄엄 이어지고, 장면전환이 빠르고, 어떤 장면은 완전히 생략되어있기도 하다.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것처럼 문장 사이, 장면 사이의 일들을 관객이 스스로 채워 넣게끔 한다. 빈 공간 없이 대사와 액션씬으로 가득 차서 정신을 쏙 빼놓는 그런 일차원적인 영화와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에겐 여백으로 가득 찬 이 영화가 어렵기도 하다. 정답을 집어주는 족집게 강사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스승님 같달까. 평소처럼 손자의 밥을 차려주고 손자가 밥을 맛있게 먹기를 원하는 미자, 그리고 한 밤 중 잠을 자던 손자를 깨워 오열하던 미자. 영화 내내 그녀의 복잡한 감정의 세계에 몰두된다.



주변에서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가는 와중에도 미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새가 지저귀는 소리, 길가에 핀 꽃, 땅에 떨어진 살구.. 아름다운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어쩌면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를 찾아 헤맸는지도 모른다. 시는 그녀에게 완벽한 아름다움, 안식처,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닿을 수 없는 오아시스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 수업을 배우는 사람들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들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 아름답기만 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음이 있기에 할머니와의 추억이 더 소중하고, 오랜 반지하 생활이 있기에 해가 들어오는 좁은 월세방을 얻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갖게 되며,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았기에 언니의 작은 관심에도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영화엔 실제로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다가온다. 시 쓰는 게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그는 '시를 쓰기 어려운 것은 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는 마음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게 참 맞는 말이다. 나도 시에 관심이 있었고 시를 즐겨 읽었지만, '나 같은 게 감히 시를' 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펜을 들고 종이를 펼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첫 문장을 쓰는 것이 두번째로 어렵다. 한 번 마음을 내고, 실제로 펜을 들어 빈 공책을 채워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시를 쓰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시를 쓰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도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쓸 수 있길 바란다.


영화의 막바지, 미자는 어쩐지 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즐겨 쓰던 화려한 모자 없이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더 이상 남들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자기가 필요한 것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결단력도 보여준다. 눈빛이 달라졌달까, 마지막 손자와 배드민턴을 치는 장면에선 일종의 투지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본인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나서 그녀는 드디어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래는 그녀가 쓴 시.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젠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에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 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마치 한 편의 시를 읽은 것 같은 영화였다.


시를 읽을 때 한 번 읽고 모든 의미가 이해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소 두 번 읽어야 아, 이런 의미이구나 조금 감이 오고, 어떤 구절은 계속 곱씹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그냥 그 시를 읽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돌아본다. 렌트를 안 하고 구매를 해서 다행이다. 다시 봤을 때 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영화를 만들어 준 감독님께 고맙다.



덧.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아름답기만 한 사람도 추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것 모습을 보고, 혹은 한 번 말을 해보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 한 사람, 이라고 쉽게 정의 내 버린다.

시를 많이 읽고, 시를 읽는 마음으로 다른이 들을 바라보면 세상을 더 성숙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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