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by 이승재

팔월의 태양이 땅 위의 것들을

집어삼킨다

하얗게 바랜 껍데기를 다시 게워내며


변두리 낡은 삼층 건물

당구장과 키스방과

지하엔 곰팡내 나는 노래방

서로의 살 냄새를 이어주며 공생하는


낮밤 가리지 않고 비워 낸

소주병만이 뒹굴뒹굴 증식을 거듭하는

어두운 계단 한켠

상처받은 짐승이 서식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도시의 귀퉁이


새까만 때가 겹겹이 낀

시멘트 바닥에 취한 숨결을 거칠게 비비며

수천 년 묶은 곰팡내를 전수받는다

발 여섯 달린 벌레들과 잠자리를 섞는다

그렇게 묵은 것들을 몸으로 발효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식은 심장이 다시 뜨거운 피를 펌프질하려나

태양과 대면할 수 있으려나


태양을 향해 눈을 들면 모든 것이 하얗게 타버린다

빛의 세상에 유배된 야행성 동물

그에게 필요한 것, 어둠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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