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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17. 2020

'나는'이나 '내가'

스스로를 시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라 칭하는 어느 작은 사람이 그랬다

‘나는’이나 ‘내가’, 이런 말이 시에 들어가면 촌스럽다고

그런 말 좀 안 쓰면 안 되겠냐고

네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읽는 사람 짜증난다고

나는 내가 얼마나 ‘나는’이나 ‘내가’를 사용하는지 살펴 보았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나는 ‘나는’이나 ‘내가’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 후로 나는 내가 ‘나는’이나 ‘내가’를 사용하려고 할 때 마다 주저하게 되었다

그 시 써서 먹고 사는 작은 사람의 시학의 힘으로

나는 내가 ‘나는’이나 ‘내가’ 공포증에 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나는 또 생각한다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나는’이나 ‘내가’는 단호하다

‘나는’이나 ‘내가’라고 쓰는 나는 내 글에 나를 투척한다

‘나는’이나 ‘내가’가 들어가서 촌스럽고 짜증나는 것이 시라면 나는 내가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하면 그만이다

나는 내가 ‘나는’이나 ‘내가’를 쓰면서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나는 내가 쓰는 글에 ‘나는’이나 ‘내가’가 들어간다고 해서 그 시 써서 먹고 사는 작은 사람에게 촌스럽게 보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이나 ‘내가’야 말로 작고 불안한 내가 의지하는 실존적 동아줄이니까

시 써서 먹고 사는 작은 사람이 짜증을 내거나 말거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예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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