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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21. 2020

공존

에어콘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벤자민 나뭇잎 

작고 어린 것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푸르름이 짙고 두툼하다가 

얇게 바랫다가 

때론 하얗게 눈부시다가 

빛은 진동하는 이파리에 부딪혀 

매번 새로운 색깔을 얻어 날아간다 

그렇게 생명은 

바람이 전하는 사연에 제 몸을 떨어 

떠도는 빛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바깥소식을 전하면 

이파리의 떨림에 계절의 색깔이 입혀지겠지 


아열대의 태양 아래, 도시 

녹아내리고, 흐늘흐늘 

빨간 입술이 느릿하게 

느릿하게 움직인다 

보폭에 따라 변하는 빨간 파장 

쫓아, 눈동자도 빨갛게 흔들린다 

파장의 굴곡에 

의식의 주파수를 겹친다 

두 개의 파장이 만나 

또 하나의 소우주가 만들어진다 

아마도 공명으로 붉게 타다 재가 되는 공상 

흐늘거리는 몸뚱이에 눈동자만 분주한 사이 

빨간 소우주가 흔들흔들 멀어진다 


나, 

나를 의식에서 추방한다 

실눈을 뜨고 주위를 더듬어 본다 

흔들린다 

모두가 흔들린다 

저마다의 파장을 갖는 

그래서 저마다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들의 떨림이 손끝에 만져질 때 

비로서 내 심장의 느린 박동을 

세상에 풀어놓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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