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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21. 2020

위기의 여인

물 알기를 우습게 알면서 물을 다스리려던 여인이 있었더라 선대에, 흐르는 물에 유독 각별한 적대적 집착을 보였던 이가 있었으니 그로부터 성벽을 쌓아 들이치는 물살을 막아내는 특별한 기술을 물려받았더라 성벽은 조립식이라 그 사용이 다양하였으며 쇳덩이로 만들어져 부서지지 않았고 촘촘하여 물 샐 틈이 없었더라 본디 성정이나 살아온 역사가 격한 것을 멀리하고 험한 꼴에 익숙치 않은지라 미약한 물기만 느껴져도 식겁하여 조립식 성벽을 과하게 쌓아 올렸더라 그리하여 왠만큼 물이 차오르기 전에는 성벽 밖의 평화는 완벽하게 보호될 터였더라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성벽 안의 수위가 빠르게 차올랐더라 물결이 넘실대기 시작하였더라 벽 안에 고립되어 고인 물이 어찌 물결을 이루고 거칠어 질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였더라 조상님과 주변 어르신들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얻은 메마른 땅은 기필코 메말라있어야만 했더라 넘실대는 물결이 파도를 이루어 자칫 벽에 부딪쳐 쪼개어지고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파아란 부서진 물이 더 많은 것들을 파랗게 물들일 수 있으니 걱정이었더라 하지만 어쩌면 좋으랴 바람도 없는 뜨거운 여름을 관통하며 물결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무쇠도 부숴버릴 에너지로 성벽을 흔들어대고 있었더라 어느 누구를 잡아 족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지라 더욱 답답할 뿐이더라 어느 누구도 물을 끌어 모으지 않았더라 물방울 하나하나 수증기 입자 하나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처음에는 질척한 물기이던 것이 조그만 웅덩이를 이루더니 이제는 광장을 호수로 만들 만큼 자라났더라 물이란 것이 본디 방울방울 흩어져 있으면 털어내면 그만이지만 모이고 모여 거대한 부피를 갖게되면 세상을 멸할 수도 있는 힘을 얻는 것이라 과거에 신께서도 세상을 갈아치우기 위해 물을 이용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견고한 성벽만을 믿고 있었으나 이제는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없었더라 성벽을 부수고 넘쳐 흐르는 짙푸른 물살에 허우적 허우적 떠내려가 물이 폐 가득히 들어차 질식하는 꿈을 자주 꾸었더라 당장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에 물에 의한 심판이 있을지도 모르는지라 이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더라 꿈은 이루어진다고 남의 돈 들여 대대적으로 공갈을 쳐 왔는데 이 험악한 물꿈이 이루어질 판이니 한심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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