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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Mar 25. 2020

세 개의 신파적 즉흥곡

여인1이 책에 시선을 고정한 동안 탁자 위의 커피는 잊혀진 듯 식어간다 나는 그녀를 향해 그리고 그녀는 나와 직각으로 앉아있다 가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뿐 흐트러짐 없는 그녀의 자세는 조각처럼 견고하지만 물결처럼 유연하다 바닥에 가지런히 모아진 맨발과 사선으로 아래를 향한 시선은 식어가는 커피잔처럼 고요하게 향기롭다 한쪽 방향으로 눈을 가지고 태어난 동물에게 직각은 무한한 외로움이다 


세븐일레븐 옆에 매드포뷰티 옆에 롯데리아 옆에 귀족부동산이 단호하게 붙박혀 있는 배경에 여인2가 시선을 낚아채듯 등장하여 귀족부동산을 지나 롯데리아를 지나 매드포뷰티를 지나 세븐일레븐을 빠른 걸음으로 관통한다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스커트 아래로 매끈하게 뻗은 다리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능숙히 하이힐을 찍으며 직선의 궤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녀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날카롭게 나뉘어진다  


애인의 손목을 잡고 여인3이 애원하는 눈길을 허공에 띄워 놓는다 그녀의 남자는 무게 중심을 여인의 반대편에 두고 안타까운 표정을 제조하여 얼굴에 쓴다 그녀는 마지막을 아는 여인의 포옹을 남자에게 안겨준다 애틋함이 그녀의 잘 다듬어진 긴 머리카락을 흘러 두 연인을 애워싼다 남자는 정확히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 포옹을 허락하고 정확히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 힘으로 여인을 떼어 놓고 등을 돌려 떠나간다 여인은 한 동안 남자가 떠나간 방향을 바라본다 애틋함은 그녀를 이탈해 공간을 표류한다 핸드백을 고쳐 매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멀어지고 멀어지고 멀어지는 여인을 끝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부서진 여인의 사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전염병 같이 서글픔을 퍼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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