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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Jul 10. 2020

우울증과 봉춤을

아침이다. 눈을 뜨고 싶지 않다. 하루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살아야할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들 역시 무의미하다. 몸은 한 없이 쳐진다. 살아있음이 거추장스럽다. 슬프다. 아침마다 겪는 이 슬픔이 당혹스럽다. 그래도 피할 수 없기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하루를 맞이한다. 


그렇다. 나는 우울증과 살고 있다. 처음 진단은 8년 전에 받았다. 그전에 몇 년간은, 글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우선 매일 미열과 그로 인한 오한에 시달려야 했다.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힘들 정도의 피로가 늘 함께 했다. 오 분이면 끝낼 수 있는 간단한 일도 막상 앞에 닥쳐오면 가슴이 조이고 호흡이 가빠졌다. 간, 신장, 갑상선 등 온갖 장기를 검사하였다. 정상이었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의사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담담하게 통보했다. 


우선 약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열과 피로가 없어졌다. 하지만, 염세적인 생각과 무기력으로부터는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약을 바꾸고 이런저런 조합의 약을 시도하였다. 노력의 결과로,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치료 효과를 보고 있다.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고 일할 수 있다. 우울증 이전의 의욕 넘치는 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나는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은 아직도 무의미하고 일은 하찮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하게 될 일을 하며 내가 없어져도 티도 안 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부터 나는 아마도 일중독에 빠졌던 것 같다. 일을 손에 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지속적인 긴장과 일에 대한 집착이 우울증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짐작해 본다. 근 20여년을 자기학대에 가까운, 일에 대한 열정에 의지하여 살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성취 지향적이었고, 목표를 위하여 ‘올인’하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 여겼다. 일이 나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울증과 함께 살면서 삶의 패턴과 가치관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 무기력의 영향 아래 살면서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여유 시간을 많이 가졌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잠도 많이 잤다. 저녁에 바에 가서 사람도 만나고 맛있는 술도 마신다.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시작했고, 이러한 쓸모없는 일들이 의외로 위안이 되었다. 처음에는 일 이외의 다른 것들로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불편하였고 이로 인해 죄책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삶의 패턴이 정착 되었고 이제는 일에만 집착하는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와버렸다. 


우울증과 무기력은 삶의 동력을 빼앗았고, 동력을 잃은 삶은 표류했다.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삶의 곳곳에 좌절과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바닥을 쳤고, 그로부터 올라오는 길은 이전의 길과 같을 수 없었다.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삶의 패턴이 필요했다. 삶은 뚜렷하지도 명백하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연했다. 달려갈 만큼 강한 동력이 없었다. 하지만, 달리지 않게 되니 의외로 발견하는 것들이 생겼다. 여유로워지며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과 성취를 향한 일차원적인 삶이 다채로운 경험을 관통하는 다차원으로 변모하였다. 이제 나는 전혀 다른 패턴의 삶을 산다. 


지금의 삶이 과거의 일차원적인 삶에 비해 개선되었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유와 다채로움은 일견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삶이 다채로워진 만큼 지향점이 희미해진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희미한 지향점은 필연적으로 삶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불안하다. 때때로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지탱하는 축이 하나가 아니다. 그래서 기둥 하나가 부러진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을 안다. 우울증은 나를 변화시켰다. 변화는 완성되지 않았고 진행형이다. 변화하는 나는 다소 불투명하고 불안하지만 쉽게 부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유연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은 여전히 나와 일 사이에서 이간질을 놓는다. 그래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투쟁이다. 일은 아직도 내 삶의 중요한 축이다. 과거에 이 축을 열심히 올라가기만 했다면, 이제는 축을 돌며 봉춤을 추는 형국이다. 올라갈 힘도 없거니와 올라갈 이유 또한 찾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노닥노닥 쉬어가면서도 초조해 하지 않으려 한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도 어렵지만, 삶을 확장하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봉춤을 추어본 사람은 말한다. 봉춤이 얼마나 힘든지, 단순히 봉을 타고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지만, 그들은 덧붙인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고 중독성 있는지. 우울증과 추는 봉춤,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 지금의 나는 심지어 삶의 다양한 안무를 기대할 만큼 여유롭고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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