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너 나무에서 자라니?
요즘 도시 아이들은 감자가 나무에 달린다고 생각한다.
감자튀김, 감자 칩, 매쉬 포테이토의 형태로만 감자를 접해본 아이들은 감자가 뿌리 식물이며 땅속에서 수확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감자가 감자 칩 모양으로 생겼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
영국 유학 시절 런던에 놀러 온 친구와 재래시장을 찾았는데, 줄기가 달린 당근을 보고는 당근인 줄 못 알아보았다. 이렇듯 우리는 먹거리가 어떻게 자라고 수확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까. 흙과 먼지가 깨끗이 제거되어 정리된 채소와 과일, 도정을 마친 육류와 어류는 공장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제품과 같다. 이처럼 재료의 원산지와 성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바다에서 갓 잡은 고등어, 과연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머리와 꼬리를 잘라 손질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만약 나의 동생에게 생 고등어를 저녁 재료로 줬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빅토리아 가든
빅토리 가든은 제1,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의 시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음식 자원을 더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졌던 캠페인으로,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사람들은 빅토리 가든을 만들어 가족이나 친구들, 이웃들이 먹을 채소를 직접 길러 먹었다. 마당이 없는 가정과 함께 밭을 일구고 연대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
폭탄이 떨어진 구덩이와 기찻길 옆 그리고 도심 속 공원도 밭으로 개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40%에 달하는 식량이 이 빅토리 가든을 통해서 수확되었다고 한다. 필요한 식량을 직접 수확하면서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 것이다.
1988, 그 시절 우리는
현대인들은 오직 편리를 위한 공장식 사회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 생산과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
2015년 흥행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에는 뭐든지 고치는 맥가이버 ‘정봉이 아빠’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려지며 망가진 티브이부터 드라이기 그리고 막힌 변기까지 척척 고쳐낸다. 그 시대 사람들, 예를 들어 나의 외할머니가 덧버신을 몇 번이고 기워 신으시는 모습에서 무엇이든 절약하고 고쳐 쓰는 방식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현재는 계획적인 노후화가 적용된 생산품이 증가함에 따라 수명이 짧아지고 폐기물이 쌓여가는 속도도 가속되고 있다. 한 가지 예로 패스트 패션은 값싼 원자재와 낮은 품질의 저렴한 제품을 선보이며 수선하는 비용보다 옷을 새로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게 되었다.
원시에서 진보적 문명으로 이행하면서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배를 선포했고 이로 인해 성장 제일주의가 사회 깊은 곳에 자리 잡으면서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발전이라는 생각이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앉았다. 자연을 오직 우리의 뱃속과 호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하나뿐인 지구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
코로나 19, 지금 우리는
지금 지구는 자신을 야금야금 파먹으며 병들어가게 하는 인간에 대한 면역체계가 발동된 듯하다. 기후 온난화로 극변 한 날씨부터 멸종되어가는 동식물의 개체수 더 나아가 잦아진 신종 바이러스의 출몰이 극적인 예시다.
빌 게이츠는 open letter에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19’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변했는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을 식료품과 물, 약과 같은 본질적인 것이지, 때때로 필요도 없이 가치를 부여하는 사치품들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슈퍼에서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 것은 식료품과 약 같은 생활필수품이었다. 부유한 계층도 백화점에 가죽으로 된 명품 백을 사러 가는 대신 제일 먼저 식료품점을 찾았다.
빅토리 가든, 앞으로 우리는
전시 상황에 준수하는 현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의 이기주의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냈다. 생필품 사재기 현상과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차별과 범죄 그리고 통제된 국경은 굳게 닫힌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산업화된 농경 시스템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생필품과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바로 씨앗이다. 미국에선 팬데믹으로 인한 도시 봉쇄가 강행되면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유통에 차질이 생기면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대안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뒤 마당에 ‘빅토리 가든’을 만들기 시작했다.
https://www.cbsnews.com/news/coronavirus-seeds-americans-grow-food/
단순화되고 단일화된 산업화 시스템에 맞춰 바뀌어버린 우리의 의존적인 삶을 자연과 융합된 주체적인 삶으로서 변화시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시작점으로 베란다나 뒷마당에 빅토리 가든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지금까지 지구는 기후 위기와 같은 다양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고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절제된 삶을 추구하며 자연에 대한 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이를 통하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세대들에게 농작물에 대한 흥미를 높여 먹거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며 더 나아가 자연과 사람의 연결고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경아 환경 운동가/영상 감독, 슬리퍼스 써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