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이름은 '정끝별'.
누가 지어주었을까. 집안 어른인가, 아니면 저 아득히 먼
이미 소멸한 별이 이제야 지구에 당도한 빛으로,
시인 스스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싶은 열망으로 지은 것일까.
<와락>은 시집 제목이다.
내 안의 찌꺼기들, 나 또한 서러워 서러워서
표제처럼 그녀에게 와락 안겨 왈칵 쏟아내고 싶다
복받치는 분통과 희열을 나누고 싶다.
한 때는 뜨거웠고 부둥켜 안았지만 끝내 식어가는 말, 말.
그 세세한 파편들을 보듬어 내 품으로 와락 안겨온 정끝별님.
오늘 아침을 이 시인과 함께 연다.
* 막고 품다 *
김칫국부터 먼저 마실 때
코가 석자나 빠져 있을 때
일갈했던 엄마의 입말, 막고 품어라!
서정춘 시인의 마부 아저씨 그러니까
미당이 알아봤다는 진짜배기 시인의 말을 듣는
오늘에서야 그 말을 풀어내네
낚시질 못하는 놈, 둠벙 막고 푸라네
빠져나갈 길 다 막고 갇힌 물 다 푸라네
길이 막히면 길에 주저앉아 길을 파라네
열 마지기 논둑 밖 넘어
만주로 일본으로 이북으로 튀고 싶으셨던 아버지도
니들만 아니었으면,을 입에 다신 채
밤 보따리를 싸고 또 싸셨던 엄마도
막고 품어 일가를 이루셨다
얼마나 주저앉아 막고 품으셨을까
물 없는 바닥에서 잡게 될
길 없는 외길에서 품게 될
그 고기가 설령
미꾸라지 몇마리라 할지라도
그 물이 바다라 할지라도
* 불멸의 표절 *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냄새를 표절할래
앙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자리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
그래, 본 적 없는
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를
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
닝닝 허공에 정지한 벌의 생을 떠받치고 선
저 꽃 한송이가 감당했던 모종의 대 역사와
어둠과 빛의 고비에서
나를 눈뜨게 했던 당신의 새벽노래를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표절할래
풀리지 않는, 지구라는 슬픈 매듭을 배껴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될래
다다다 나무에 구멍을 내듯 자판기를 두두리며
백지白紙의 당신 몸을 표절할래
첫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길을 열며
조금은 글썽이는 미래라는 단어를
당신도 나도 하늘도 모르게 전면 표절할래
자, 이제부터 전면전이야
* 와락 *
반평도 못되는 네 살갖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정끝별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문학사상>> 신인상 시부분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 자작나무 내 인생>>
<< 흰 책>> <<삼천갑자 복사 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