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수레를 끄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이 말은 어찌 보면 뜻은 매우 평범하지만
중국 당나라를 대표하는 선승, 남악회양(677~744)선사의 대단한 가르침이다.
여기 소개하는 유명한 말씀은 마조도일 선사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 어느 날 마조 스님이 전법원에서 매일 좌선을 하고 있었다. 남악회양 선사는
그가 훌륭한 법의 그릇임을 알고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대덕은 좌선해서 무엇을 하려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남악 선사는 벽돌을 하나 갖고 와 절 앞 바위 위에서 갈고 있었다.
그것을 본 마조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않는다면 좌선을 한다고 어찌 부처를 이룰 수 있겠는가."
마조 스님의 이 질문에 남악 선사가 하신 말씀이 곧 이 말씀이었다.
"예컨대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한다.
"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앉아 있는 부처를 배우는가.
만약 좌선을 배운다면 선이란 앉고 눕는 데 있지 않으며,
만약 앉아 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일정한 형상이 아니다. 그대가
앉아 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일이다. 앉아 있는 것에 집착한다면
그 바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리라."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그렇듯이 평범한 진리가 위대하다는 뜻이다.
어찌 이런 말씀들이 수행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겠는가.
차가 멈췄을 때 차를 매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기사에게
차를 운전하라고 부탁한다.
이 간단한 문제를 놓치고 근본이 아닌 지엽적인 일에만 마음을 쓰는 우리가 아니던가.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지엽인지 몰라서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유약한 가치관 때문인지....
몸을 다스린다고 억지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가,
몸에 여러 가지 병을 얻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불교든 기독교든 어리석은 사람은 몸만 움직여
산사와 예배당을 찾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안의 마음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오늘 이 글은 <무비스님의 명구 100선> 책에서 발췌하고 짧게 편집을 해 보았다.
쭉 적어 내리며 내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누가 나를 매번 때려주기만을 기다릴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때리며 하루하루를 지탱해나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