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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많지만 무던하게
난, 롤리타 그 애한테
by
이영희
Jun 18. 2019
오래된 영화 롤리타를 보았다.
교수직책을 가진 서른 중반의 남자가 12살 소녀를 데리고 미국, 그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애증과
성 도착증을 풀어낸 이야기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소련 사람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이 작가는 그 시절, 롤리타를 써내리며 치열한 고민과
사람들의 백안시를 이겨 낼 배짱을 가지고 소설을 썼을 것이다.
글 쓰는 재능을 가지고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과,
그 세상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아는 중년 남자를 등장시켜
인간의 속성이 과연 어디까지 선이며 악인지, 고의와 저의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거듭 생각하게 한다.
문제작이 되려면 평범한 것으론 안된다는 것을 포착하여
갈 데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인간 내면을 대변하듯 쓴 이야기.
소설일 뿐이야, 그저 영화일 뿐이야라고 말하지만,
막상 영활 보고 나면 누군가와 원치 않은 기분 나쁜 싸움을 치러낸 것처럼
허허롭고 비참하다.
그럴듯한 내레이션으로 주인공이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변명조로,
설명조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남자가 엄청나게 고민하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알만한 유명 배우와 유명 감독이 최선을 다해 예술로 승화시켜 놓았지만
어린 소녀의 불편한진실이, 남자의 병적인 고뇌가 품격있는 예술로 그치면 좋겠지만
이젠 현실에서 더 많이 보고 듣는 잔인함.
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런 류의 영화와 책은 이제 21세기엔 공공연한 소재로 자극이 되지 못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처음 출판됐을 때,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지금은 명저로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듯이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회자되려면 '금서'와 '분서' 정도는 되어야 했던 19세기
와
20세기 초.
요즘의 금서와 분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현실세계의 잔인함을 이제는 소설도 영화도 따라잡지 못하는 걸까.
어린 자식을 죽이고,
딸을 재혼한 남편이 성폭행하는 걸 눈 감는 엄마들이 있으며,
전 남편이 현재의 행복을 방해한다며 처참하게 죽이는 부인이 버젓이
살아 돌아다니는 이런 현실을 소설가들이
어떤 식으로 더 잔인하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만하자.
어제, 남편에게 롤리타 이야기를 해주며 기분이 좋지 않으니
술 한 잔 사라고 했다.
돌아온 말은
" 난 롤리타 그 애한테 손 끝 하나 대지 않았다.
술은 그 기분 나쁜 놈한테 사달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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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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