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무게

by 이영희


당나라 때 시인 백낙천이 항주의 태수가 되어 부임 길에 있었던 일이다.

진망산을 지나가는데 고승인 도림 선사가 나뭇가지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모습으로 좌선을 하기에 작소鵲巢선사로 불렸던 스님인 것이다.


백낙천이 그 나무 밑을 지나면서 선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그렇게 새처럼 살고 있으면 위태로우니 내려와 사는 것이 어떤가"


선사의 말이

"아니다. 이대로 놔두게나. 위태로운 것은 자네일세. 그대의 마음속에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백낙천이 이 말을 받아

" 옳다. 하지만 詩를 굽기 위해 태우고 있는 불이니 위태로울 게 없다."


선사의 돌아온 말은

"그렇다면 나는 空속에 나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짓이니 위태로울 게 없다"


이렇게 시인과 선사의 인생 문답은 진행해 나간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백낙천이 묻기를

" 부처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했는데 나만이 존귀한 존재라 했으니 남을 얕보는 것이 아닌가. "


선사가 대꾸하길

"평상 남에게 베풀기만을 가르친 부처님이 그렇게 오만할 수 있겠는가. 존尊에는 무겁다는

뜻이 있음을 모르는가. 천상천하에서 내 나름대로 무게를 갖는다는 뜻이지 나만 존귀한

존재라는 뜻은 아닐세...."





여기까지 옛 책 속에 나온 글을 두두리며 생각이 너울댄다.

당신의 무게와 나의 무게는 얼마나 나가는가.

세월 따라 자존심의 무게만 남는 듯하다.


자존심 상한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한다.

누구의 옷 자랑에

누구의 가방 자랑에

누구의 고급 자동차에

누구의 집 시세에

누구의 자식 자랑에

누구의 남편 돈벌이에


그렇게들 할 말이 없나.

그렇게들 자랑거리가 궁색한가.

입이 딱 닫아지고 마네.

입 다물면 그나마 내 나름의 무거워지는 尊에 가까워지려나.

왜 귀는 두 개인가.

저런 말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오늘 새벽 두 시쯤이던가.

글을 하나 올려놓고는 삭제키를 눌렀다.

날이 밝아 다시 읽어보니 재미도 없거니와 그저 그런 내용이었다.

몸속 깊숙이 박힌 췌장이 근질거렸다.


어느 한 분이 삭제하기 전에 라이킷을 눌러 놓았었는데,

그분께 미안함을 전하며 이 글로 대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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