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말, 말,

by 이영희



때때로 스스로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쓸데없는 생각으로부터 끄집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속없이 동경했던 것들에서, 또는

같잖은 말들의 홍수 속에서.

미숙하고 볼품없었던 말 말 말.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그녀의 작품을 연구하며 김수현을 닮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오지고 당차게 던지는 말.

"연구해봤자 작가 안 돼요. 타고나야 돼요"


타고난 소질은 없더라도 그래도 연구는 해야지.

솔제니친의 소설 <암병동>

우울하며 어둡고, 서러운 눈물 자국이 보이는 억압된 한恨의 세월.

몸속에 기생하는 암과의 사투.

구 소련만이 갖고 있던 암울한 시간을 잘 접목하여 대작이 나왔다.

오래된 소설이지만 결코 오래된 문장이 아니다.

읽다가 눈 길이 멈춘 곳, 목메는 따스함을 어쩌지 못해

브런치를 열어 오늘을 걸어 둔다.





<솔제니친의 말, 말, 말>


*

나의 내부의 전부가 나 자신이 아니다. 가끔 분명히 그렇게 느낀다. 뭔가 불멸의 것이

대단히 고귀한 것이 깃들여 있다. 세계정신의 파편 같은 것.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

우리들의 이 암울한 세기에서는

어디를 가나 인간은 폭군이 아니면 배신자.

그렇지 않으면 죄수라네. - 푸시킨-

................ 우리에게 남겨진 길은 세 가지밖에는 없다. 나는 감옥에 들어간 일도 없고,

폭군이었던 일도 절대로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무엇인가.


*

속담에 돈은 아무리 많아도 너무 많지는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 번 잘못된 일은 끝까지 잘 못 되는 법이다.


*

불길한 기운이란

막연한 것이기는 했으나 집요한 것.


*

자기 자신과 타인을 통틀어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적인 기능이나 요령 있는 생활 방법이다.

그 어느 쪽도 다 같이 돈이 된다. 두 사람이 만나면 우선 이름을 묻고, 직업을 묻고,

수입을 묻는다. 만일 벌이가 신통치 않으면 그자는 못난 사람이거나 불행한 사람이거나

아무튼 신통치 않은 사람인 것이다.


*

허세를 부리는 인간은

닭. 마치 닭과 같다. 어떤 놈이고 목이 잘릴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도 시끄럽게

울어대며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 저희와 같은 무리들이 잡혀 죽음을 당해도

나머지 무리들은 여전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


*

토요일 밤이면 병실에도 어쩐 일인지 눈에 띄지 않는 안도감 같은 것이 찾아든다.

휴일이라고 해서 환자들이 병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병을 걱정하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의시의 진찰이나 대대적인 치료로부터

해방되는 것뿐이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하는 영원히 어린애 같은 부분이 기뻐하는 것이리라.


*

건강하고 힘차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동안에 사람은 기적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지만,

생활에 타격을 받고, 억압과 좌절을 당하게 되면 그 유일한 기적, 예외적인 기적을 믿는 것이다.


*


재능이 있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보다 죽음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

재능이 있는 사람은 죽음으로 인해서 무능한 사람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지 않는가.

무능한 자는 그의 무능에 비길만한 긴 인생이 필요하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영원히

다룰 수 없다고 에피쿠로스도 말했다.


*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생활수준에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접촉에서, 그리고

생활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여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접촉도, 생활을 어떻게 보느냐도

우리들 자신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다시 말해서 사람은 행복을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행복한 것이어서 아무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는 것이다.


*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기뻐하라.

작은 일에도 만족하는 사람이야말로 현인인 것이다.


*

낙관론자란, 어디를 가나 비참함 일 뿐인데,

이곳은 아직 괜찮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을 말하다.

비관론자란, 어디를 가나 좋은 일뿐인데,

이곳만은 재수 없게도 좋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을 말한다,


*

일반적으로, 누가 가장 괴로운가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명백히 결과를

알 수 있는 경쟁과는 다르다. 누구든지 자기의 불행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 일생이 실로 비참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당신 쪽이 훨씬 더 괴로웠을지 모른다.

그러니 판단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내 감정에만 휩쓸려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니까.


*

자기 앞의 생.

그것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돌며 장시간에 걸쳐 허비하고 나서 결국

하찮은 물건밖에 사지 못했을 때의 피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새롭고 신나는 생활을 약속하던 그 시절은 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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