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르라도 세상의 모든 사건, 사물이 소재가 된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 쓰고는 깜박이는 커서만 보고 있다. 재촉하는 커서를 달랠 방법은 노트북을 덮던가 말다운 말을 계속 이어줘야 한다. 이렇게 글이 막힐 때면 브런치 서랍에 저장한 글들을 뒤져본다. 사람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도 있고 공개하지 못했던 어설픈 글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저장된 메모 중에는 "헤르만 헤세는 <<황야의 이리>>에서 “살 수 없음과 죽을 수 없음” 이란 말을 했다고 쓰여 있다. 그 바로 밑에 “쓸 수 없음과 안 쓸 수도 없음”이라고 적어 놓은 글' 아마 그날도 이 메모를 시작점으로 괜찮은 글을 하나 엮어보고 싶었을 텐데 한계를 느끼며 커서의 재촉에 눈을 사납게 흘기며 노트북을 닫아버렸을 것이다.
나의 글 쓰는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내 유전자 속에는 어느 정도의 지적 회로와 ‘영감`이 깔려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동서고금의 훌륭한 예술가들의 유전인자 속엔 분명히 다른 성분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고성능 칩이 하나 더 내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찮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을 접어두고, 예전엔 읽기에만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수준 높은 작품들의 행간 속에 감춰진 정신을 식별하는 능력이 그나마 내게 조금이나마 있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했다. 그 많은 선각자들은 내게 아름다운 길을 안내해 주며 고귀한 정신과 깊은 통찰력을 길러주는 예술가들이 있어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완벽한 인생이 없듯이 완벽한 글도 존재하지 않다는 선각자들의 말에 더 큰 위로가 되어 다시 노트북을 열어 쓰기에 열정을 더해 보기도 했다.
지금도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 읽고 또 읽어 본다. 이 부분은 괜찮은가, 이게 말이 되나, 어떤 것을 잘라내야 되며 무엇을 덧 붙여야 할까. 순서를 바꿔 볼까. 생각의 꼬리에 꼬리만 길어진다.
자기도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문장들. 짜증이 확 밀려온다. 알량한 읽기와 적은 경험으로 결국 지금 이 글도 치밀하지 못한 윤곽만으로 끝나고 마는 건 아닌지.
살아오며 대단한 역경을 겪은 것도 아니어서 심사숙고했다거나 체험한 것이 두텁지 못하다. 써 보았자 그게 그거인 것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조금만 들춰보면 구체적인 것이 아닌 혼란함에 머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허술한 글일망정 마음을 열어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예민한 독자가 보면 얼마나 견딜 수 없을까. 친구는 내가 이런 넋두릴 할 때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을 계속하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겠냐"라고.
어떤 이들은 에세이를 어느 장르보다 훨씬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진 명 산문의 간결함이야말로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음을. 짧은 글 속에서 최대한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사유와 경험을 축적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자괴감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커서가 여기까지 내려와 깜박인다.
어설픈 감동과 교훈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뜻 모를 낱말 배열이나 모호한 글로 그나마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끈적이는 여름날에 짜증 나게 달려드는 파리는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옛날 체력장에서 철봉에 매달려 안간힘을 다쓰는 기구한 몰골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