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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많지만 무던하게
내가 심심한 걸 어떻게 알고
by
이영희
Jul 13. 2019
어제, 수영을 끝내고 내 신을 찾으니 없다.
허~ 이런 일이 내게도.
분실사고가 있으니 신발은 본인의 사물함에 꼭 넣으라고 고딕체로 적어 놓은
강조의 팻말을 무시하고 아픈 날과 여행하는 기간만 빼고
9년 넘게 한결같이 입구에 벗어 놓고 들락거렸으니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입구에 벗어 놓는 여자들이 나 말고도 꽤 있다.
함께 운동하는 회원의 신을 빌려 신고, 근처 신발가게에서 만 원짜리
샌들을 사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신. 유명 메이커는 아니고 디자인이 조금 튀는 샌들일 뿐,
사실 크게 속상할 만큼 아깝지는 않다.
순간의 난감함만 텅 빈 머릿속을 헤집는다.
사라진 신발. 신고 갔든 싸들고 갔든 가져간 이유에 대해서만
몇 가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심심한 걸 어떻게 알고 도둑녀는 이런 추측까지 해보라며 숙제를 주는지....
**, 그녀도 운동을 마치고 나와서 보니 자기 신이 없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 벗어 놓은 몇몇 신발 중에 맘에 드는 걸로 갈아 탄 것이 내 신이었나.
**, 갑자기 약속이 잡혔는데 자신이 신고 온 것은 약속 장소에 어울리지 않아
새 것을 사기에는 돈이 아깝고, 그중 나은 것이 내 것이었나.
**, 얌전히 잘 포장되어 있던 그녀의 도벽이 불쑥 삐져나와 어쩌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에 이끌려 내 것을 들고 달아났나.
어떤 것이 답일까.
그녀의 심리를 어찌 알까.
운동 센터에 오는 여인들이 그동안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기의 물건이 하나라도 없어지면 안으로 밖으로 마구 떠들어대기에,
만약 그들의 소지품이 없어지면, 몇 날 며칠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시끄러워지곤 한다.
잃어버린 자의 부끄러움도 분명 있다.
가져간 자의 괘씸함과 뻔뻔함보다 고딕체의 경고를 지키지 않은 나 자신도 부끄러운,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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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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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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