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을 깨거나 알을 깨거나

by 이영희



자기 털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거듭나려면

재탄생, 부활하려면

르네상스 하려면

자기 털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마음에 대해 강의하는 그 박사님은

계속 털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털이란 말을

살면서 오늘처럼 수차례 한꺼번에

강조로 들어 본 적 없다


팔뚝의 털, 겨드랑이 털

사타구니 털, 코털, 노랑털

머리카락은 머리의 털이지, 머리털

털보 등등이 계속 떠올랐는데

모두들 박사님이 날려대는 이 털을 어쩜

킥킥거리지도 않고 진지하게

표준어 틀로 반듯하게 잘 줍고 있었다


박사님이 던지는 '으' 발음이 매번 털리는 털

경상도 발음의 안되지만 되는 털로 가슴 새로 짜

창공에 자유한 새 가슴이 되어

르네상스하러 신인간 하러

두 시간 반이나 꼬박 의자에 앉은 채 날아가는 사람들


굳어버린 우리는 굳어버린 경상도 발음

털, 털, 털을 통해서라도

알을 깨거나 틀을 깨거나 / -이진명





이 시를 읽고 살짝살짝 웃었지만

묵직한 것이 가슴을 내려 누른다.

브런치에 올린 내 글들을 살펴보니

빗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수북한 머리털 같다.


브런치, 여기 잘 마련된 마당 안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작품들.


가슴에서, 생활에서 나온 글들을 보며

울림이 있는 글이 쉽게 쓰였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쉽게 잘 읽히게 하기 위해 어렵고 고단한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며 힘을 키웠을 것이다.


내가 구독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글을 올렸다며

알림음을 보내온다.

굴뚝같은 생각들을 간결하든 또는 장문이든

꼼꼼하게 정리하고 보여주는 정성.

어찌 허투루 읽을 수 있을까.

정성스러운 문장들.

저 위의 시인처럼

진지하게 반듯하게 속뜻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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