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환시기>

by 이영희


幻視란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엇이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환시기〉이 작품을 읽으며 이상의 삶의 패턴이나 정신세계는 여자가 바뀐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분명히 읽혔다. 만약 이상이 아내(금홍)와 헤어지고 순영(권순옥)과 결혼했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비유하자면 강북에 살다가 강남으로 주소를 옮겨갔을 뿐일 것이다.


소설 속의‘나’(이상)는 현재, 그리고 가까운 과거를 오가며 실제로 권순옥과 정인택,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과 허구를 버무려 쓰고 있다. 어쩌면 여자의 얼굴이 삐뚜름하게 보이는 것은 환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순영에 대한 버거운 감정을 똑바로 꿰뚫어 본 것을 역설적으로 풀어간 것 같다.


〈환시기〉는 단순하게 보면 삼각관계 이야기다. 아니 사각관계다. 이상 자신을‘나’로‘순영’은 (권순옥),‘송 군’은 소설가(정인택)를 모델로 했다. 권순옥은 금홍이 가출했을 때 이상이 사귄 여자다.


대부분의 소설이 첫 문장에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의 도입부는 고리끼의 희곡인 ≪밑바닥≫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다. ≪밑바닥≫을 검색해보니 도둑, 병자, 창녀, 노름꾼, 알코올 중독자 등 삼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리끼의 이 작품을 찾아 읽는다면 서두에 왜 이 글을 넣었는지, 그가〈환시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일지 파악하는데 더 깊이가 있을 수 있겠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고리끼 전집을 독파했다는 처녀 이상인 순영이 송 군에게는 은근한 자랑거리일 거라며 ‘나'는 생각한다. 송 군은 여편네의 얼굴이 삐뚜러 져 보인다며 사 년 동안이나 순영을 따라다닌 (이상)에게 그 사실을 몰랐었냐며 다그친다.


장면은 바뀌어 사 년 전 여름, 어느 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나’는 어떻게 하면 가장 민첩하며 가장 자연스럽게 순영의 입술을 건드릴까, 자세와 거리를 생각하다가 순영의 얼굴이 왼쪽으로 삐뚜러 져 보여 행동을 접는다. 왼쪽으로 기울어져 보인다는 환시는 독자들에게 엉뚱하게 들리지만 소설 속 ‘나’(이상)에겐 순영과의 관계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고 바로 잡아가야 할 문제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순영을 사랑하는 나, 그리고 자실 소동까지 벌이는 사랑의 열병에 걸린 친구인 송 군.‘나’의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질투, 해결되지 않는 아내 금홍과의 관계, 그렇다면 송 군과 나, 둘 중에 누구를 만족시키는 게 옳은가.


이상은 이 출구 없는 사랑의 쳇바퀴에서 내려오는 방법은, 예정된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무기력한 생활, 희망 없이 되는대로 살아지는 자기 자신을 가감 없이 떠올려 봤을 것이다.


예정된 기억이란, 만약‘나’와 순영이 결혼한다면 얼마 동안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오래지 않아 금홍이가 자신을 진저리 치며 가출을 하듯, 순영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지금 같은 생활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미 눈앞에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순영이가 얼굴에 침을 뱉어도 금홍이가 반년 만에 집에 돌아와도 남자는 추궁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병적인 무력감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금홍의 몸에 엎드리어 금홍이의 몸이 순영의 몸인 듯이 탐하며 욕정을 쏟아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집착을 보이는 사랑의 행위에서 금홍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직감한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송 군이 아내 얼굴이 자꾸 삐뚜름하게 보인다는 이 장면은 몇 가지 뜻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4년 전,‘나’와 순영이가 깊게 사귄 것이 꺼림칙하여 그럴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고리끼 전집을 독파한 여인도 징징대는 것은 여느 여편네와 마찬가지여서 실망의 토로인 듯 보인다.


마지막은 책을 팔아야만 해결되는 바닥을 치는 생활고와 일제강점기 밑에서 지식인들의 증발한 양심에 대한 자책까지 맞물려, 세상사가 온통 삐뚜름하게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결말은‘나’는 송 군에게 그 환시를 바로 잡는 방법은 어찌해 볼 도리 없는 현실을 억지로라도 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며, 두 사람은 원근법으로 슬픈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 이 감상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느낌은 몇 번이고 바뀔 수 있습니다.

나만의 오득을 즐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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