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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말 것

by 이영희

<잡초를 생각함>


오늘은 어머니가 밭둑 너머로 휙휙 집어던지던

잡초 같은 거나 생각한다


명아주 같은 거, 쇠비름 같은 거, 바랭이 같은 거,

그런 거나 생각한다


말라비틀어진 잡초 한아름 안고

쇠똥 되똥

콩밭 고랑으로 걸어가던 내 걸음걸이 같은 거나 생각한다


뿌리째 뽑혀 내던져지던 거, 뿌리째 뽑혀 내던져지던 거,

그런 거나 생각한다


밭둑 아래로 한 주먹 휙 집어던질 때 풍기던

잡초 냄새 같은 거, 잡초 냄새 같은 거, 그런 거나

한 소쿠리 생각한다


한평생 잡초를 거머쥐고 쥐어뜯던

내 어머니의

그 모질고 독하고 질긴 손아귀 같은 거나 생각한다

-- 유홍준 --



."......... 진부함의 수월성을 저는 사랑합니다. 한 발만 헛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진부한 시의 균향성! 마침내 제가 다다르고 싶은 경지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왔습니다.


......... 휘둘리지 말 것, 망하더라도 내식대로 망할 것, 사소한 평가 같은 것엔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말 것, 결국 시는 나와의 싸움이고 그것이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좋으니까, 다만 진부하되 그 진부함이 실패로서의 진부함이 아니라 갱신의, 갱신의 결과로써 진부할 것".. --- 유홍준의 소월시 수상 소감에서 발췌 ---





어제는 시를 읽다가 하루키 소설을 보며 보냈다. 그들만의 은유와 비유로 펼쳐지는 활자 안에서 나도 따라 다른 세계로 멀리멀리 팽창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다 늦은 오후엔 수영하고,

마트에 들려 가지와 갈치를 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시인의 말이 계속 가시처럼 밟혔다.


'휘둘리지 말 것', '갱신의 결과로 진부할 것'.


어렵다.

그 태연함, 초연함을 향해 시인은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부한 단어들과 머리싸움을 했을까. 그리고

간결함과 밀도 있는 낱말의 갱신을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


'휘둘리지 말 것'

내가 쓰고 있는 지금 이 글을 사람들이 '이건 뭐야' 하며 읽다가, '그냥 잡초잖아' 하며 휙휙 내 던져지더라도 실망하지 말 것. 누군가 한 사람에게 옅은 풀내라도 풍긴다면.....


어느 분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세상에 그나마 알려지는, 프로 작가라고 이름을 떨치는 작가는 피라미드의 정점 그리고 그 바로 밑의 5%에서 10%라고.

그 말이 옳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창과와 국문과, 글 써서 적으나마 돈을 벌고자 하는 많고 많은 젊은 작가 지망생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브런치>.

여기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브런치에서 주는 푸른 희망을 믿고 가는 사람들.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꾸준하게 글과 웹툰을 올리는 사람들.

이곳의 통통 튀는 젊은 분들에게서 틈틈히 다시 배우고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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