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의 저녁 빛이 빗기는 가운데 술에 까부륵 취한 할아버지와 손주는 누구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려 갔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왜 저물도록 무덤가를 맴돌다가 술에 취하고 말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그림 속에는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아이의 아버지다. 시인은 짐짓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아이 아버지야말로 바로 두 사람이 제사지낸 무덤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아들의 무덤에 제사지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심정, 할아버지가 왜 저러시나 싶어 말똥말똥 올려다보며 부축하는 어린 손주의 손과 천진한 눈빛,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슬픈 흑백영화의 한 장면같은 詩.
한 줄을 읽으면 머릿속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들.
얼마나 내가 슬픈지, 얼마큼 마음이 아픈지 시시콜콜 감정의 바닥을 긁어내는 시는 많다.
그저 신세 한탄일 뿐, 더도 덜도 아닌 말의 잔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했듯이 그럴수록 더 옛것을 자주 찾아 읽고 고전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좀 더 깊고 청량한 맛의 시와 산문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도 옛길 ,그 새벽 흙길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