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런 날

by 이영희

몇 년 전부터 눈 앞에 까만 실이 허상으로 매달려 있다. 날파리같은 것이 눈 앞에 날아다닌다. 그때도 안과에선 노안 증세에 백내장 시초지만 수술할 만큼 나쁘지 않은 상태라며 나중에 시력이 많이 떨어지면 그때 하자고 한다. 얼마 전에 다시 세밀하게 안과 검진을 받았지만 여전히 수술 단계는 아니라고. 안약을 꾸준히 넣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어느 날은 말끔히 사라졌다가 다시 성가시게 한다. 그냥저냥 시기가 올 때까지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래도 읽어야 할 책은 자꾸 쌓여간다.

비주류로는 첫 노벨상을 탄 - 피아노 치는 여자- 를 겨우겨우 마쳤고, 2주째 들고 있는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는 언제까지 들고 있을지. -괴테와의 대화- 을 엮어낸 에커만은 앞장에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자세히 진술해 놓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 주위의 도움과 그의 운도 따랐겠지만 이루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과 열망으로 에커먼은 대 문호인 괴테에게 자기소개서를 보낸다. 괴테 또한 탁월한 안목으로 젊은 낯선 사람에게서 받은 편지 몇 줄에 그 남자의 지식과 지혜에 대한열망과 곧은 인성을 파악하고는 에커먼을 비서 겸 제자로 가까이 두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

괴테,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문학은 물론 음악 , 미술, 건축, 연극, 자연과학 등등 다방면에 지식을 축적해가는 과정이 놀랍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앎의 기쁨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엿보며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옛말이 절로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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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는 한마디로 미쳐가는 모녀 이야기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꽤 알려져 있다. 어머니, 그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빠져나갈 수 없는 위험한 지배와 폭력. 결코 헤어나지 못하는 사십이 가까운 딸 에리카. 그녀는 거세된 남자가 아닌 거세된 여성성을 갖게 되며 결국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어린아이를 다루듯 또는 인형 놀이를 하듯, 애완동물을 기르듯 자식을 소유하는 엄마. 그 밑에서 벗어나려 하지도 그렇게 할 마음도 없이 암담한 비정상적인 생활에 흠뻑 길들여진 나이 든 딸은 어느 날 젊고 늠름한 한 남자를 만나면서 여자의 보잘것없는 자존감과 그녀의 정신상태의 밑바닥까지 까발려지고 만다. 그 처참한 몰골. 남자는 여자 둘이서만 한집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며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남자란 어떤 동물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그녀의 곁을 떠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무엇을 다루고 싶었을까.

겉으론 센척하는 요즘 말로 걸 크러쉬 한 여자들의 겉모습 뒤에 우리가 모르는 약해빠진 본질을 다루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요즘 부모들이 자식을 금쪽같은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하늘 아래 내 새끼처럼 귀하고 잘난 것이 없다고 착각하는 만연된 과대망상을 그린 걸까.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스스로는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게, 그것이 자식 사랑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무기력하고 괴상하고 시시해 보이는 사회현상들.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아닌 시사성 많은 암호들을 배치하여 하나하나 풀어보라는 메시지 같다.


이렇듯 눈도 부실하고.. 책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 간다. 그래도 눈의 컨디션이 좀 좋아지면 노트북의 글자판도 또렷하고 책 속의 활자도 무리 없이 읽힌다.


오늘이,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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