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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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을 얻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부서지지 않으려 하지만 수없이 깨지고 상처가 아물어야 詩로 보여지고 산문으로 읽히겠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봐야 소용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고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소를 잃었을 것이다. 아무리 살아내도 고쳐야 할 버릇은 내게 여전히 남아 있다.
한 신부가 착하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농부의 고해를 받으면서, 평소에 하던 대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농부의 대답은
" 믿지 않습니다 신부님, 만일 믿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살 리가 있겠습니까.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먹고 마시며,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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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농부처럼 신앙을 이해하고 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습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기도하는 것은 진실로 진실로 진실한 기도일까.
정호승 님의 시와 농부의 짧은 이야기를
필사하며새벽을 열었다. 지금까지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오랫동안 해 왔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과정의 되풀이다. 아무리 사소하고 이런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고 얘기할 가치도 없을 만큼 어리석은 것이라고 해도
글로 써봐야지만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생각은 불온하여 모든 종교에 반한다는 이유로, 이 문장은 이래서 걸러내고 저 구절은 욕먹을까 싶어서 걸러낸다면 적으나마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렇고 그런 사실이라 해도, 내가 느낀 것은 나만이 쓸 수 있다는 소신이 없다면, 이 글도 중간 어디쯤에서 이미 삭제키를 눌러 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