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지금의 침대가 편하다.
밥도 간단히 차려 쟁반에 올려 침대에 걸터앉아 먹고,스케치 북과 색연필도 침대 위에 펼쳐 놓고 색을 입힌다.
이 침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작년 여름부터 수술대에 두 번 올랐다.허리에 철심을 박는 칼자국과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돼
복숭아 뼈와 발등에도 메스 자국이 있다. 아직 완전해지기까지 몇 달이 더 걸린다.재활에 힘쓰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 쓰던 내 방의 침대 매트리스가 편치 않았다. 몸이 성치 않으니 예민해져 회복이 더 느려지는 기분에 침대를 바꿔보자고 했다.
남편은 조금만 참아보라 말하더니 나무 사다가 줄자로 재단하고 톱이라는 오래된 연장을 쓰고 전동 드릴로 꼼꼼하게 나사를 박고 니스 칠을 몇 번이고 하여 내게 선물한 걸작이며 秀作이다.
10년 전부터 내겐 책상이 없다.
불편하거나 부끄럽지 않다.글 쓰는 사람이 그렇게 조악하게 살 수 있냐고 놀랍다는 사람도 있다.
굳이 책상이 필요하지도 않았으며 필요하다면
노트북을 펼치는 데는 주방 식탁이면 족하다.
책상에 앉아야만 글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책상이란 도구에 붙들려 살았지만 공부를 썩 잘 해내지 못했다.
생각도 누워서 하는 일이 편하고
글도 모바일에 이렇게 누워서 찍어대니 머리 회전에 부담도 없다.
친구는 내 집에 와서 책상이 없는 것에 놀랐다며, 그녀는 집을 꾸밀 때 책상의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책상 없는 방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 친구야, 너는 책상이 없어도 글 쓰고 거기다 인정받는
작품까지 써냈으니 꼭 책상을 고집하는 내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예전에 어느 여류 작가는 종일 시집살이에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마치고 피곤에 절어 자리에 누우면 곧 곯아떨어져야 했건만, 글 쓰는 시간이 딱 그 시점. 자리에 누웠을 때만이 유일하게 혼자일 수 있었으며, 그렇다고 책상에 앉을 기력도 없어 누워서 노트에 연필로 써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아니요.
대단한 작가정신으로 글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침대가 가장 내 몸상태에 잘 맞고, 생각도 유연하며
책상이 주는 강박적인 긴장감이 없어 무엇보다 좋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내게 침대는 철학이며 인문학이다.
때론 식탁에서 논어를 노자를 맹자를 필사했지만
공자가, 노자가 책상도 없이 공부한다고 나를
나무란 적 없었으며, 침대에 누워 스피노자와 러셀,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들을 읽어 내린다고 그들이
성의 없는 독서라고 내게 눈을 부라린 적도 없었다.
만약 내게 근사한 반짝이는 책상이 있었다 해도 침대를 더 선호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쩌면 이 글이 타고난 게으름을 변호하는 뻔뻔함일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머리와 손을 써서 최선을 다해 짜준 이 침대는 어느 과학적인 침대보다 몸이 가뿐하며 손가락도 부드럽게 키보드를 찍어댄다.
침대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