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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Mar 12. 2019

나 돌아갈래

                                                                    

  연암 박지원이 쓴 글 중에 --도로 눈을 감고 돌아가시오--라는 작품이 있다.

여러 번 읽고 다시 읽어 문장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볼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일깨우는 글이기에 여기에 써 본다.


   줄거리는

--본분으로 돌아가라 함이 어찌 문장만이리오. 일체의 모든 일이 그렇지요.

화담花潭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 너는 왜 우는가 -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 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기쁨과 슬픔이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 


  오래전에 읽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마라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와 어쩌면 

이리도 닮아 있을까. 이 책을 덮고는 멍하니 한참을 생각다가 감상문을 쓴 적이 있었다. 


  사마라구는 연암과는 반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침 출근 시간. 멀쩡히 운전을 하며 가다가 갑자기 눈이 멀어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사람과 접촉하는 사람은 모두 장님이 되는 전염병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며, 나중엔 

도시 전체가 장님이 되어 교양과 이성. 그리고 지식은 간데없고 모두 오물을 뒤집어쓴 듯  

비참하고 참담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욕심과 이기심을 버렸을 때에 비로소 다시 

한 사람 한 사람 눈이 떠지면서 세상이 밝아 온다는 소설. 


  이 두 작품을 비교해 보니 동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읽히는 메시지는세상이 변하고 변하여도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우리를 

꾸짖고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내게는 연암 박지원이 훨씬 간결하게 세상을 꼬집는 통찰을 주었다.

포르투갈 작가, 사마라구도 물론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을 교화시키는 장편소설을 

써 내렸지만 연암이 훨씬 앞선 안목으로 인간 본성을 되찾자는 글을 발표한 것이다.

어쩌면 그 외국작가는 박지원의 작품이 번역본으로 나온 것을 읽고 무릎을 탁 치며

- 바로 이거야-  하며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써 내려간 것은 아니였을까. 

  나는  엉뚱하지만 그럴듯한 상상을 해 본다. 


  고전과 현대.

옛사람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다시 조명해보며 아침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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