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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Feb 28. 2020

봄, 봄



    - 장석남, 「수묵 정원 9 – 번짐」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


이런 詩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제대로 번져졌던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막힌 이 표현.

탄생과 죽음을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이 마지막 구절을 향하여 장식되어 내려온

시어들. 예리하게 나를 헤집는다.




하나 더 적어 본다.

송나라, 어느 비구니가 지은 오도시(悟道詩)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 머리 구지 가 보았지

      돌아올때 우연히 매화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벌써 와 있었네


그녀 봄을 찾으려고 온 산을 헤매는 것은 구도,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것이겠지.

 어찌보면 파랑새, 그것과 닮아있다. 파랑새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지만 결국 찾자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파랑새는 자기 집마당에서 울고 있었다는...그렇듯이 깨달음은 먼데 있지 않다는.

                  **悟道-- 도를 깨닫는 순간의 법열


조금 길어졌지만 번짐, 향기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더 보태고 맺기로.

옛날 옛날 과거 시험장에 <향기> 를 표현한 시를 지으라는 문제가 나왔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하는 꽃과 나비를 그려내고

어떤 이는 파리가 꼬이는 구린내를 표현했다.

많고 많은 표현 중에 장원으로 뽑힌 시는 바로 이것이다.

......./  당나귀가 즈려밟고 가는 꽃무더기

                      그 당나귀 뒤를 따르는 나비..../




아크릴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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