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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Feb 05. 2021

기본은 시절을 타지 않는다

어느 분이 말했습니다.

글 쓸 거면 팬티까지 벗을 각오로 해라.

그런데 차마 다 못 벗고 비키니까지 쓰고,

또 어느 땐 원피스 수영복까지만 씁니다.

그러다 때로는 잠수복으로 무장하고는

긴 호흡으로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해삼, 전복, 돌문어... 이것은 독후감, 영화평,

음악회, 이런저런 작법에 관한 것  .

글 맛은 나지만 자신의 진짜 이야기는

물미역처럼 살랑이며 살짝 얹혀갑니다


어제는  이웃 분들 중에 작가의 길로 열심히

가시는 두 분의 이야기에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며 반성과 채찍으로 자신을 다그쳤습니다.

 분은 최작, 영어 이니셜을 쓰는 분이며,

다른 한 분은 고 작가입니다.

나목처럼 누드화처럼 제게 왔습니다.

두 분에게선 삶의 향기가 매섭게

진하게 배어납니다

함부로 얄팍한 감성으로 고개만 끄덕일 수

없습니다. 두 분에게 인생을 다시 배웁니다.


팬티까지 벗을 각오는 그런 척, 아닌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고상한 척 통할 수

없습니다. 어가면무도회에서 뛰쳐나와

자신만의 골방에서 치열하게 객관적으로

혹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처럼 주변 인물들을 관찰해야 합니다.


위에 두 분이 아니라도 자기 앞의 역경을

생생하게 다큐식으로 쓰는 분 자주 봅니다

그러나 구독하며 꾸준히 정독한 글 중에

저 두 분의 작품을 어제와 그제 읽으며

이곳에 제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 안에  알알이 박힌 이야기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허나 나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 정도의 글감으로 이어갑니다.  

그날그날, 감정과 기분엔 충실하지만 속속들이

치부와 부끄럼까지 감당하지 않으려 합니다.

착한 글, 아름다운 글, 좋은 글은 넘치고 넘칩니다.

검색만 하면 줄줄이 사탕입니다.


어느 분은 고급 수저로 태어나 쭉 곱게 곱게

성장하여 무난하게 좋은 학벌로 이어지고,

그 밥그릇에 맞는 집안끼리 맺어져 자식들에게

금박, 은박 입힌 수저를 대물려주는 사람들.

주위에 몇 귀부인을 알고 지내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 그들은 글 쓰지 않습니다.

쓴다 해도 결코 자랑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공감대가 좁습니다.

그들의 앉은자리가 그러한 걸 또한 함부로

판단하고 왜 그렇게 쓰냐며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아주 옛날엔 귀족이나 양반들만 읽고

쓰기를 했으니 삶을 초월하고 달관한 철학서나,

人과 仁의 섭리에 탁월한 분들의 옛글에서

저 또한 깨치고 응용하며 공부하곤 합니다.


더 길어지면 안 될 듯합니다.

그림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두 분 모습이 떠올려집니다. 앞으로 내내

통쾌한 홈런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

제 글 중에 저 밑에 밑에

<지금>이라는 목으로

올려 것을 다시 복사하여 붙이며, 제가

벗지 못하는 원피스와 잠수복을 째려봅니다.




** 바람을 추월하고 번개를 뒤쫓는 천리마는 결코 암수나 털 색깔 따위의 외관에 있지 아니하고, 소리가 상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짝하게 만드는 작품을 내는 작가는 절대로 문자나 형식에만 얽매이는 답답한 인간들 사이에 있지 아니하며, 바람이 물 위를 스칠 때 퍼져나가는 물무늬와 같은 아름다움은 절대로 한 글자 한 구절의 기특함 속에 있지 아니하다. 엄밀한 결구나 적절한 대우, 이치나 법도에 합당한가의 여부, 수미가 상응하고 허실이 번갈아 일어나게 하는 등등의 갖가지 병폐는 모두 글 는 방법으로 논의되지만 천하의 으뜸가는 문장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 --- 이지(李贄)의 <焚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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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 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 또 더 파서 여섯 자 깊이에 이르러 그 탁한 물을 퍼낸다. 또 파서 아홉 자의 샘물에 이르러서야 달고 맑은 물을 길어낸다. 마침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보면, 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다시 배불리 마셔 그 정기가 오장육부와 피부에 젖어듦을 느낀다. 그런 뒤에 이를 퍼서 글로 는다. 이는 마치 물을 길어다가 옷을 빨고 땅에 물 주어 어디든지 쓰지 못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  고작 석자 아래의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의 부서진 모서리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여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 위백규<김섭지에게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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