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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희 Nov 17. 2023

구원은 어디에

― 영화 <죽여주는 여자>

      

  배우 윤여정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인간적이며 따뜻함이 있다. 최근에 <미나리>가 외국의 이름 있는 영화제에서 큰 조명을 받았고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남기기도 했다.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 감상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고령화 가족>과 <죽여주는 여자>는 잊히지 않는다.     

 

   <죽여주는 여자>는 탑골공원에서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소영(윤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종로 일대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녀와 가깝게 지내는 주변 인물로는 허름한 이 층집주인으로 나오는 트랜스젠더인 티나, 그 집에 세 들어서 사는 장애를 가진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이 있다. 소영은 성병 치료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과 함께 살고 있다. 티나와 도훈 그리고 코피노 소년의 삶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지만, 감독은 노인 문제를 중심축에 놓았다.

  그 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궁색하며 추레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불행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에 지나친 관심이나 쓸데없이 개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도울 수 있는 선에선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던 중, 소영의 손님 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송 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소영은 깊은 혼란에 빠진다.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농약을 먹여 그를 죽여주게 된다. 소영의 진정한 성격은 여기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선택하느냐가 곧 그 사람됨이라고 그녀는 보여주는 듯하다. 그 일을 계기로 질병의 고통으로 죽고 싶어 하는 병든 노인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진다.     

  

 영화는 살인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미스터리 범죄 이야기가 아니다. 수사망을 유유히 따돌리는 두뇌 싸움이 없다. 여자는 살인의 흔적을 곳곳에 흘려 놓아 꼬리가 잡히면서 교도소에 들어가지만 후회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변명하거나 빠져나오려는 몸부림도 없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승에서의 업을 끝냈다는 편안함이 스친다. 젊은 날, 미군을 상대로 양공주 시절에 흑인 병사와의 관계에서 낳은 어린것을,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멀리 입양 보내야만 했던 그때의 일. 어쩌면 깊은 가슴앓이를 감옥에서 생을 마침으로써 스스로 구원하는 것 같았다.     

  인간을 불안과 불행에서 구원해 준다는 신은 인간적이지 않다. 제발 고통에서 놓여나기를 바라는 노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하늘나라로 땅속으로 어서 데려가주길 간절히 기원하지만, 의술과 의약의 발달로 전능하다는 신도 어느 적당한 시기에 목숨을 거두어가는 권한을 더는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먹어야 할 처방된 알약의 수는 늘어나고 결코 나아질 기미가 없는 불치병도 온갖 처치로 기약도 없이 꼼짝없이 병원 침상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해 골똘해질 것이다. 나를 나답게 지켜갈 수 있는 죽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 지나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질병의 끔찍한 고통 속에 가족의 귀찮아하는 눈빛까지 참고 견디며 버텨내야 하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 소영이 그들을 죽여주는 방법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 노인의 성욕과 가족의 부재 그리고 질병과 고독사 등 지금의 노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낸다. 감독의 고민과 역량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이다. 더하여 배우 윤여정 또한 소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거창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인간적인 연기로써 스스로 대배우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죽여주는 여자>는 2016년 몬트리올판타지아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윤여정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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