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 허연
아는 사람 몇 명 땅에 묻어 본 다음, 나를 거쳐간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지층이 된다는 걸 몇 가지 선명하지 못한 색깔의 스펙트럼으로 남는다는 걸 알았다.
세상의 왼쪽 가슴쯤을 관통했을 이 구멍을 걸어 들어가며 단조로운 연대기를 읽는다.
위대하지 않은 말들과 싸움과 사랑과 밥이, 이 쭈글쭈글한 통로에 새겨져 있다.
그놈의 눈물은 이제껏 흐르고
그래도, 가끔은 반짝이는 게 있다.
스스로 걸어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나가는 길을 못 찾은 자들의 뼈.
위 시를 읽어내리다
뇌수가 코끝이 찡하며 시리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하다가
이건 아니지 싶다가, 다시
그렇지 뭐,
땅속에 사체를 묻거나
뼛가루를 흩뿌리고 돌아오는 날엔
하나님과 부처의 가르침보다 더한 무상함과 가벼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삶,
이게 뭐람 시시하게 이렇게 살다 갈건가 하다가 주방에 서서
다시 밥을 짓고
무를 깔고 생선을 조린다. 구차함 속의 신성함.
그러다 내 관 뚜껑에 못질하는 날
화장터 식당에서 누군가 육개장 국밥을 뜨다가 문득
나의 존재를 추억하며 잠깐이나마 반짝이는 오래된 기억의 파편을
찾아내어 <폐광> 같은 글 한 줄이라도 남겨줄 이,
나는 가졌는가.
말은 마음의 열쇠라고 했는데, 얘기해도 소용없는 경우엔 차라리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데
왜 이런 글을 끄적이는지....
색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