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by 이영희

나는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적당한 어휘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따분하고 영혼이 없었으며, 때로는 점잖지 못하게 화려했고, 또 어떤 때에는 따스한 체취가 없이 추상적이고 속이 비었다. 시작을 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았지만, 제멋대로 떠오르는 어휘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갔다.


내 계획은 고리타분한 화려함으로 만발했고, 내가 뜻했던 범주를 넘쳐 벗어나 뻔뻔스럽게 다른 공간과 시간을 침범했다. 그것은 달라지고, 또 달라졌으며 나는 그 윤곽을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영혼도 그에 따라 변하고, 또 변했으며 그것 또한 나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쓸데없이 화려하게 꾸며 비틀어버리지 않을 어휘를, 누덕누덕 장식품을 주워 모으지 않은 간결한 어휘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를 썼다.


물을 길어 마시려고 우물로 두레박을 내려 보낸 목마른 회교도 신비주의자는 누구였던가.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황금이 가득 찼다. 그는 그것을 쏟아버렸다. 그는 말했다.

“신이여, 당신이 보물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마실 물만 주십시오. 저는 목이 마릅니다.”

그는 다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셨다, ‘말’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씨앗 속의 변신이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음을 깨닫고 나는 중단했다.


언젠가 나는 올리브나무에서 유충을 떼어 손바닥에 놓았던 기억이 난다. 투명한 꺼풀 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보였다. 그것이 움직였다. 비밀의 과정이 틀림없이 끝막음에 다다라서, 아직 갇혀있는 미래의 나비가 햇빛으로 뚫고 나올 성스러운 시간을 조용히 떨며 기다렸다.

그것은 서두르지 않았다. 신의 영원한 법칙과, 따스한 공기와, 빛을 자신 있게 믿고, 그것은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조급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지기를 원했고, 육체가 무덤에서 나와 어떻게 영혼이 되는지를 보고 싶었다.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유충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주기 시작했고, 보라! 유충의 등이 곧 저절로 찢어지더니 껍질 전체가 꼭대기에서 밑까지 서서히 갈라지고, 날개가 비틀리고 다리는 배에 달라붙어 한 덩어리로 뭉친 채 아직 덜 자란 연두 빛 나비가 나타났다. 그것은 얌전히 꼼지락거리며 따스하고 끊임없이 불어주는 내 입김을 받아 점점 더 살아났다.

움트는 포플러 잎사귀처럼 파리한 한쪽 날개가 몸에서 저절로 떨어지더니 길게 펼치려고 경련을 일으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개는 반쯤 펼쳐진 채로 쭈그러졌다. 곧 다른 쪽 날개도 움직여서 펼치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되자 반쯤 펴진 채 떨렸다. 인간의 뻔뻔스러움을 지닌 나는 계속해서 몸을 쭈그리고 따스한 입김을 찌그러진 날개에 불어주었지만, 이제는 돌멩이처럼 뻣뻣하고 맥없이 축 늘어져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는 속이 뒤집혔다. 내가 서둘렀기 때문에, 영원한 법칙을 내가 감히 어겼기 때문에, 나는 나비를 죽였다. 내 손에는 시체만 남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비의 시체는 그 후 줄곧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다.

..... ....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맞으며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오리라.
하지만 보라,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맹세를 어기고 있었다. 조르바의 유충이 다 자라지를 않았어도 난 서둘러 그 껍질을 벗기려고 했다. 스스로 수치를 느낀 나는 원고지에 끄적거린 모든 글을 찢어버리고 바닷가에 누웠다.


ㅡ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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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서전> 이 책이 30년 넘게 내 곁에 머물고 있다. 내게 생각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지 세월이 많이 지나도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카잔차키스의 저 문장을 그때 30년 전에도

일기장에 정성스레 필사했었다.

오늘 다시 옮겨보며 글쓰기의 어려움을 돌아본다.


내게 글쓰기로 마음을 굳히게 한 작가는 박경리, 박완서, 김훈, 도스도옙스키 발자크 플로베르 등등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있었지만 바로 이 사람 니코스의 저서전이 내게로 와 북극성이 되었다.

그토록 많은 책과 책사이에서 마음밭을 다스렸지만 강열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했으며 영감을 불어 넣어준 작가다.


부모님에 대한 글은 세상에 많고 많지만 카잔차키스의 자서전 안의 그의 부모님만큼 내 뇌리에 오래 기억되게끔 쓴 작가는 없었다.

그래서 쓰고 싶었다.

내 부모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된장국과 모차르트- 는 그렇게 해서 오랜시간 기다리고 다듬고 다듬어 나온 글이 되었다.


다음엔 다산 정약용의 글로 서문을 열고 싶다.


파스텔과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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