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그때는 내게 운전이 가장 절실했다. 거동이 불편한 친정 엄마가 다니고 싶은 곳엘 모시고 가고 싶었다.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데 시간이 여유로운 내가 해 드리는 것을 가장 편안 해하실 텐데. 하며 이번 기회에 꼭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남편은 내가 운전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너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안돼, 다른 사람들에게 운전 방해하지 말아" 하며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하곤 했다.
'그래, 두고 보자. 면허증을 눈 앞에 들이댈 테니' 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고는 학원에 등록하고 다음 날 강남 면허시험장에 가서 학과 시험을 보았다. 점수는 넉넉하게 통과했다. 다시 학원으로 가서 장내 기능시험 준비를 했다.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틀 후, 막상 차에 오르니 떨렸다. 이것까지는 누구나 그렇듯이 무사히 통과. 문제는 도로주행. 전국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강남 시험장이라고 들었다.
A코스 C코스를 머릿속에 입력하며 어디쯤에서 신호 바꾸기와 차선 바꾸기 등등.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학원에서 열심히 연습을 시켰고 나도 정신 차리고 코스를 외웠지만 처음 시험은 예상대로 떨어졌다. 차선 바꾸기에서 뒤차와의 거리가 안정적이지 못했으며 급브레이크를 두 번 밟은 것, 등등.
다시 심기 일전하여 재시험 날짜를 받아 두었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청심환을 먹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바짝 정신을 차렸지만 어떻게 돌았는지도 모르게 코스를 다 돌고 나니 다시 탈락. 세 번째 도전하여 합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 사진이 또렷이 박힌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기뻤다. 주민등록증만 있던 내게 국가에서 내주는 두 번째 등록증이었다.
그러나 그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겐 면허증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들에게만 말했다. 정말 축하한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시내 연수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남편에게 말했다. 신통찮은 반응이다. 이 사람 마음속엔 아내가 남편에게만 의지하며 시중들기만을 원하는 오래 묵은 사고방식이 뇌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니, 크게 서운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남편이 제주도에 여행을 가자며 날을 잡았다. 그곳에서 내게 차를 내주며 해보라기에 보란 듯이
구불구불한 길도 발과 핸들을 유연하게 밟고 돌리며 보여주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남편의 묵은 사고방식 안에는 아내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