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입구. 뭉텅 잘려나간 하반신을 시커먼 고무튜브로 감싼, 자벌레처럼 기어 오던 사내가 행락객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몇 사람이 바구니에 동전을 던지고 거머리를 떼어내듯 지나쳤다. 붙잡은 손을 뿌리 치치 못한 여고생이 엉거주춤 서자, 사내는 배밀이로 밀고 온 납작 바퀴 음악 통 밑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 무 문짜 하 한번, 이라고 했다. 왜뚤삐뚤 눌러쓴 글씨의 구겨진 종이를 여고생에게 내밀었다.
나 혼 자 북 한 산 에 서 조은 구 경 하 미 미 안 햐 오 지 배 만 이 써 려 니 답 답 하 지? 지 배 가 면 우 리 가 치 놀로 가 오 사 랑 하 오.
사내는 서늘한 눈매의 여자 사진이 붙은 예쁜 열쇠고리를 마구 흔들어 보이며 연방 누른 이의 웃음을 웃었다. 여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문자를 찍어주고 있었고. 북한산 입구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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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김주대 시인의 작품이다.
시인은 각주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주정선의 주막'이라는 인터넷 블로그의 글, (http://blog.daum.net/jkk8442/9534136)을 변용한 것이라고 썼다.
집에만 있는 배밀이도 못하는 남편보다 더 심한 중증의 아내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였을까. 시인은 우연히 블로그 넷 서핑 중에 눈과 마음이 번쩍 떠지는 글에 사로잡혀, 삭막한 시대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산의 봄 햇살은 고무튜브로 감싼 사내를 거머리를 떼어내듯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는 겉만 멀쩡하게 보이는 우리에게만 내리는 게 아니라고. 하늘은 편견 없이 따뜻한 햇살로 모두를 보듬어주는데, 인간들만이 서로 네 편 내편 하며 오만한 행동을 거침없이 해 댄다.
그러나 문자를 대신 찍어주는 푸릇한 여고생을 보며 이 나라에 싱싱한 '희망'이 보인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해 주고 있다. 이 시를 옮겨보며 내 문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똘똘 뭉쳐진 내 안의 이기심을 거머리를 떼어내듯 떼어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