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박한 재주라도
길었던 통점
by
이영희
Jun 10. 2019
청송 사과
-- 이규리
전화로 주문했더니 그 남자는 먹기엔 괜찮다며 흠 있는 사과를 보내 주었다
흠, 흠, 내 흠을 어떻게 알고서
어제오늘 이미 여러 차례 떨어진 내 하관은 바닥이니 거리에 떠다니는
삼엄한 얼굴은 또 무슨 생각들을 놓친 낙과냐 비나 번개를 안아
저 흠들을 자신의 몸으로 모서리를 삼킨 거지
말도 못 하고 서러운 각을 철심처럼 넣은 거지
그렇게 울었던 시간은 울퉁불퉁 붙고 아물어
과도의 끝이 닿자 이제야 길었던 통점이 떠나가고
뭐, 큰일이나 날 것 같았던 당신의 법도 별 것 아니고
자른 채로 질려 나간 채로 그냥 묻어 살기에 괜찮으니 도리어 면면하니
흠 있는 존재, 단물까지 나는 이 서사의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으니
구태여 터놓을 것도 없을 사과를 깎는 일상의 순간
시인은 생각을 붙이고 말을 보태어 詩를 엮어내었다.
나는 저 시인의 말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까.
흠있는 사과는 많다고 부자 될 일도 없거니와
그런 사과가 없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사과 한 알에서 내 안의 흠을 찾고 시대의 흠을 보고....
지금, 나는 늦게 뜨는 중년 연예인들에게 눈을 돌려 본다.
어떤 이유로든 자잘한 배역만으로 잠깐 화면에 비쳤던 배우들은 셀 수도 없다.
그래도 꾸준히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서럽던 각을 매번 추스르고
스스로 머리와 등을 다독이며 지금의 영광을 맞이하는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TV를 켜면
흠,
흠,
점하나, 주근깨 하나 없는 매끈매끈한 얼굴들.
tv속 걸그룹과 그 중에 좀 뜨는 이이돌을 연기자로 내세운 드라마가 그렇다.
아무리 인상 쓰는 역할에 충실해도 그들은 미간에 주름 하나 긋기 힘들다.
도자기 같은 얼굴과 팽팽하게 당겨진 얼굴에서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를 얼마나 기대해야 할까.
여자 연기자들은 목소리의 높낮이만 들린다. 화냄엔 그저 고성으로,
웃을 때도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눈꼬리. 눈만 껌벅이는 자동인형 같다.
간간히 손 좀 덜 댄 연기자들만이 그나마 연기에 몰입을 더해줄 뿐.
거기다 언제부턴지 남자 연기자들도 터프함이나 진짜 사나이 같은 외모가 아닌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티 하나, 점하나 없는 얼굴로 나타난다.
매끈하다 못해 섬뜩하다.
그들의 머릿속까지 투명해 보이는 피부톤에 때때로 질리고 만다.
잡티, 주름,
그 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아주 모르진 않을 것인데.
keyword
사과
얼굴
심리
6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영희
직업
에세이스트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즐깁니다. 수필집 <자궁아, 미안해> 2022년 봄, 출간했습니다
팔로워
302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바로 이거야
으레 고리타분한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