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편안함

피렌체 야경 투어

by 아무



그날은 아침 9시부터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우피치 미술관 투어, 아카데미아, 피티 궁전, 보볼리 정원, 현대 미술관까지.

차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날 저녁은 아주 푸짐하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조금 과할 정도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와인까지 한 잔 마셨더니, 로맨틱한 피렌체의 거리가 그냥 걷고 싶었다.

그동안은 정해진 목적지를 찾느라 지도를 보며 길 찾기에 바빴기 때문에 피렌체만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무작정 걸었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탐험하다 맛집을 찾는 한국 관광객도 만나고, 좁은 골목 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가게도 발견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옅게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는 두오모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성당 앞쪽에 걸터앉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이어폰을 꺼냈다. 첫 번째 곡은 린의 '바람이 머문다'였다. 내가 선곡을 한 건지 휴대폰에 든 노래가 무작위로 나온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노래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곡은 김윤아의 '길'이었다.

갑자기 목이 아프고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났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불확실하고 불안한 내 앞의 길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창했던 마음에 잠시 먹구름이 끼었다.

음악을 껐다. 시선을 바닥으로 보낸 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 야경 투어도 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때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우피치 미술관 투어가 끝날 때쯤, 가이드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거나 손을 들었던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메신저로 문의를 해 볼까 하다가 우선 웹사이트에 들어가 야경 투어의 내용과 시간을 확인했다.

8시부터 시작이었고, 그때 시간은 7시 55분이었다. 모임 장소도 가까웠다.

일단 가보자. 가서 물어보고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고,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모임 장소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 아직 가이드만 나와 있고 다른 여행객은 없었다.

"저기, 혹시 예약을 안 했는데, 바로 야경 투어에 참가할 수 있나요?"

가이드는 약간 놀란 듯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아, 아침에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했었는데, 끝날 때 야경 투어 말씀하시길래. 혹시 현장에서 바로 신청되면 투어에 참가하고 싶어서, 사이트에서 시간이랑 장소 찾아보고 왔어요."

나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머뭇머뭇 말했다.

"잠시만요. 통화 좀 하고 올게요."

가이드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본사와 통화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다가와 말했다.

"다행이네요. 참가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현금으로 결제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투어는 나를 포함해서 7명이 참가했다. 커플 두 팀과 싱글 여자 셋.

우리는 두오모 성당, 회전목마가 있는 레푸블리카 광장, 코를 만지면 부를 가져다준다는 청동 멧돼지상, 모조 다비드상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 우피치 미술관, 베키오 다리까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 길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녔다.

여자 셋은 가이드를 뒤따르며 가볍게 인사한 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출신도 나이도 이름도 몰랐지만 우리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충분히 넘쳐났다. 나는 그들에게 친구와는 다른 어떤 편안함을 느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기에 앞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가는 길을 말로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여기서 헤어질게요."

우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번갈아가며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들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아무도 항의하거나 먼저 돌아가는 가이드를 붙잡지 않았다.

커플 두 팀과는 그 자리에서 헤어졌고, 여자 셋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다.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대신 가이드에 대한 약간의 불만과 투덜거림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평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서로 어디를 여행했고 앞으로 어디를 여행할지, 어디가 좋았고 무엇이 맛있었는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20분이 넘게 힘든지도 모르고 수다를 떨며 올라간 광장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야경을 감상했다.

검은 하늘 아래로 조명을 받아 스스로 빛을 내는 듯 보이는 성당과 어둠에 파묻힌 낮은 건물들, 아르노 강을 따라 줄지은 불빛, 그 빛을 받아 빛나는 강물과 강가의 건물 벽면이 마치 성벽처럼 구획을 지어 이곳과는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같은 풍경을 공유한 뒤 우리는 광장에 올라올 때보다 조금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는 각자의 사적인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함께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날의 만남을 달콤하게 마무리했다.

같은 국적을 가졌지만 본국에서는 다시 만날 일 없는 완벽한 타인, 그들은 내게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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