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에서 두 번째 아침을 맞았다.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으로 갔다. 빈자리가 없어 나는 한 외국인 가족과 합석해야 했다. 테이블이 커서 그 가족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에는 좋았지만, 그 테이블이 홀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잼과 버터가 발린 토스트, 스크램블드에그, 베이컨이 담긴 접시와 오렌지 주스가 든 컵을 앞에 두고 어색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시선은 멀리 창밖으로 던지거나 테이블 위 접시에 고정했다. 아침을 먹는 내내 최대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은 여유 있게, 여유! 여유!'
여행만 오면 나는 왜 이렇게 부지런해지는 걸까. 제발 오늘은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자고 저렴한 호텔의 조식을 먹으며 다짐했다.
그날의 첫 일정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었다. 성당의 아름다운 외부 전면과 최초의 원근법 회화인 마사치오의 '성 삼위일체'가 있는 성당의 내부를 아주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그런데 내가 성당 구석에서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하고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전날 야경 투어에서 만난 여행자였다. 우리는 소곤소곤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헤어졌다.
'우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성당을 천천히 다 둘러본 뒤 나는 오늘의 다짐, '여유'를 좀 부리기 위해 카페를 찾아 헤맸다.
내가 어쩌다가 레푸블리카 광장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인터넷에서 유명한 카페를 검색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된 카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카페에 가지 않았다.
두오모가 보인다는 어느 백화점 옥상 카페로 갔다.
그리고 성당에서 마주친, 야경 투어에서 만난 여행자와 또 우연히 마주쳤다.
"아!"
"어?"
"여기 같이 앉아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전망 좋은 카페인만큼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아 곤란했는데, 선뜻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웠다.
대화의 시작은 늘 그렇듯 여행에 관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후 사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녀는 왜 여행을 왔는지, 여행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여행 시작과 동시에 휴대폰을 잃어버린 이야기 -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폰 분실은 세상 남일이었다 - 등을 들려주었고, 나 역시 긴 여행을 하게 된 이유와 여행 전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나 가족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가 그녀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의외로 쉽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혼자 내심 놀라기도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는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그러네요. 벌써."
"혹시 지금 점심 먹을 거면 같이 먹을래요?"
"음, 그럴까요?"
"안 그래도 혼자 먹는 거 이제 좀 지겨워졌거든요."
"그럼 같이 먹어요."
우리는 근처 맛집을 검색해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갔다. 한산한 레스토랑에는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이 없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이번에는 가죽 쇼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서로의 행선지를 묻고 레스토랑 앞에서 헤어졌다.
조금 낯설고 어색하지만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고 어딘가 친근한 타인과의 만남이 내게는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다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야경을 보긴 했지만 피렌체의 석양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구글 지도를 켰다. 전날과는 다른 길이었다.
시간이 여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곧 일몰 시간인데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걷는 속도를 높였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결국 뛰었다. 계단을 뛰어오르다 숨이 차서 다시 걸었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이 걷고 계단을 오른 효과가 여기서 나타났다. 숨이 턱까지 차고 힘들고 지쳤지만 다리는 계속 움직였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광장에 도착했다. 일몰이 보이는 광장 계단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나는 가빠진 숨을 가다듬고 트럭으로 가서 레몬 맥주를 시켰다. 그러나 레몬 맥주는 없다며 라임 맥주를 권하기에 그걸로 샀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광장 계단에 모인 사람들 뒤에 끼여 섰다. 마른 목을 라임 맥주로 달래며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곳을 바라봤다.
이윽고 해가 산 뒤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하늘이 정말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말소리를 줄이거나 대화를 멈추고 그 장면을 응시했다. 어째선지 그 순간 키스를 하는 연인들도 있었다.
나는 맥주병을 손에 들고 가만히 서서 해가 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
머지않아 해는 다 사라졌지만 하늘은 아직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광장에서 벗어나 언덕을 내려가는 길 옆 돌담에 기대어 석양에 물든 피렌체 시내를 감상했다.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더 담아두기 위해 시선을 피렌체 스카이 라인에 고정했다.
반사되는 강물 위로 보이는 베키오 다리, 뾰족하게 튀어나온 베키오 궁전의 탑, 흐리지만 존재감이 지워지지 않는 두오모.
시간이 꽤 흐른 듯했다. 나는 언덕을 내려가기 전에 뒤로 돌아 광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둑한 빛 속을 오가는 사람들의 형체가,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그 순간 좀비처럼 보였다.
이런 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건가?
기분 좋게 로맨틱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흐려진 정신을 번쩍 차리듯 이런 생각을 하고 괜히 머쓱해져서 한 번 피식 웃고는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