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후 1시, 맑은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 때문에 방 안도 갑자기 해질 무렵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머지않아 억수 같은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집 안을 돌아다니며 열려 있던 창문을 닫고 창가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가만히 바라봤다.
비는 돌풍으로 인해 옆으로 비껴 내렸고 조금 멀리 보이던 아파트 건물은 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골목 안 대문으로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들어갔다. 다행히 우산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리는 빗줄기의 방향으로 봐서 우산은 그다지 좋은 가림막이 되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대비는 5분 정도 지속되었고, 얼마 후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참 쏟아질 것 같던 비는 이내 서서히 잦아들었다. 천둥소리는 비가 그친 뒤에도 얼마간 더 들려왔다.
나는 비가 완전히 그친 것을 확인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마치 선이라도 그어 놓은 듯 한쪽은 회색 구름이 얇고 넓게 깔렸고, 반대편 하늘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청명했다.
이처럼 장대비가 쏟아지는 풍경을 보고 나면 언제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꼭 오늘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니스에서 3박 4일을 보내고 파리로 돌아온 날이었다.
파리의 숙소는 그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친구와 같이 빌린 집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집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4일 내내 친구와 붙어 지낸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 역시 그랬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나오기 전 창문을 통해 본 하늘은 조금 흐렸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우산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여행을 가면 대체로 걸어 다니는 편이긴 해도 파리만큼 많이 걸었던 도시는 없을 것이다. 내가 파리에 갔을 때, 버스 파업인지 노선 재정비인지 도로 공사인지 때문에 버스 정류장마다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영어도 못하지만 프랑스어는 정말 단 한 글자도 몰랐기 때문에 혼자서는 버스를 타기가 조금 불안했다. 그리고 너무 복잡해 보였다. 어느 목적지든 환승 없이 가는 버스가 없었다. 걸어서 30분 거리면 걷는 편이 나았다. 버스를 타도 환승하고 이래저래 하면 결국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그래서 대부분 걸어 다녔고, 가끔 지하철을 타거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버스를 타기도 했다.
집에서 알렉산드르 3세 다리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라고 구글 지도가 알려 주었다. 당연히 걸었다. 하늘이 흐려서 오히려 걷기에는 좋았다.
앵발리드를 등지고 화려한 알렉산드르 3세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그랑 팔레가, 오른쪽에는 쁘티 팔레가 마주 보고 있었는데, 다리를 건널 무렵부터 이슬비가 내렸다.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약한 비였다.
나는 먼저 그랑 팔레로 향했다. 전면은 석조로, 뒤는 철제와 유리로 된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며 그곳에 다가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그 유명한 박물관 앞에 관람객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어쩐지 불안했다. 휴관이었다. 하필이면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인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곧바로 맞은편에 있는 쁘티 팔레로 갔다. '쁘티'라는 말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려하고 큰 전시장이었다. 어쩌면 그랑 팔레에 비해 작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전시품도 좋았지만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아서 좋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중앙 정원이었다. 그날 나는 카페를 이용하지 않고 창 안에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맑은 날 회랑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이나 커피 한 잔과 함께 정원을 감상하며 바람을 쐬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이슬비는 그쳤다. 내가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쁘티 팔레 이후 일정은 정해둔 게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알렉산드르 3세 다리를 천천히 건넜다. 다리가 잘 보이는 강변 길가에 서서 아름다운 다리의 옆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그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 든 작은 우산을 꺼내 펼쳤다. 이따금 우산을 쓴 사람도 보였지만 대부분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피할 곳을 찾았다. 바로 옆 버스 정류장에는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할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작은 가림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지만 우산을 쓴 나는 여유 있게 길가에 서서 비 오는 센 강과 파리의 풍경을 눈과 사진에 담았다. 유럽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만난 비였다. 비 오는 파리는 피렌체와는 조금 다른 감미로움이 있었다. 이 느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작고 약한 우산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다 막아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비가 그치기 직전에 막판 스퍼트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만 빼고 정말 홀딱 젖고 말았다.
비가 그쳤다. 허망할 정도로 하늘이 맑아졌다.
우산을 썼지만 쓰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젖은 운동화는 대충 빨아 널고, 옷은 나중에 다른 빨래와 함께 세탁기로 빨려고 물기를 제거한 후 빨래 바구니에 걸쳐놓았다. 그리고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샌들을 신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집을 나섰다.
자연이란 정말 예측 불가능이다.